-4- 극한의 환경
잠시나마 해방된 기분이에요.
숨을 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자해를 했다.
손등을 그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 여덟
무언가에 홀린 듯이 베어냈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 피부가 썰리는걸
두 눈을 치켜뜨며 바라보았다.
피부가 벌어지며 빨간 피가 송글 송글 맺혔다.
곧이어 손등에서 많은 피가 쏟아졌다.
많은 피가 흐른 뒤에야 고통이 찾아왔다.
따끔한 정도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잘라내서 다행이다, 그걸로 숨을 쉬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이 보면 싫어할 거야 “
내 상처를 보이게 된다면 내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혐오스럽게 바라보지 않을까, 내 선택을 존중받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보이긴 싫다.
휴지를 상처에 감싸고 후드티 소매를 올려 가렸다.
돌아온 미술실 분위기는 즐거워 보였다.
나를 의식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지만
굳이 신경 써야 할 필요성은 못 느꼈다.
최대한 이 시간이 빨리 흘러가길 바랐으며 집에 가고 싶었다. 조용히 누워 잠을 자고 싶었다.
생각보다 상처가 거슬렸다. 개의치 않아했지만
끝날 무렵 후드티에 피가 젖어있는 걸 확인했다.
난 왼손을 내려서 그림을 그렸다.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차가운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별 반응 없이 날 스쳐 지나간다. 고맙게도,
도움을 바라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 내 상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있다면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좋겠다.
같이 이겨내 보자고 말해줄 동일한 상황에서의 사람이
내 곁에 있긴 할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일까,
“선생님, 저 조퇴하고 싶어요. ”
상처를 조심스럽게 보여드렸다.
선생님이 당황하시며 다른 선생님을 불렀다.
“oo이가 위험해 보여요, 빨리 와주세요”
서있을 힘도 안 생겨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곧이어 다른 선생님이 오셨다.
내 상처를 손으로 가리키시며 물으셨다.
“많이 힘들었구나, 여덟 개의 상처자국은 무엇을
생각하며 그었니, 아팠을 텐데,“
대충 둘러대어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냥, 사는 게 힘들어서요.”
담임 선생님과 보건소에 갔다.
“어떻게 다치게 된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담임 선생님은 대충 둘러대며 미술시간에 미술도구에 다쳤다고 하셨다.
나 또한 밝게 웃으며 도자기 수업을 하다가 칼에 베였다고 말씀드렸다.
“상처가 벌어진 상태라서 꿰매야 할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내가 답했다.
“아니에요, 그냥 밴드만 붙여주세요.”
거듭 얘기하셨지만 거절했다.
“상처를 당겨서 붙이시고, 물에 닿으시면 안돼요.”
연고 잘 바르시고 나중에 다시 방문해 주세요.
손등에 넓은 밴드가 붙여졌다. 어색하게도.
담임 선생님은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셨고,
나는 그대로 학교를 나와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도 나를 반겨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사람들은 별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내 힘듦을 이해하지만, 이해로만 끝난다.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어,”
그게 뭐 어쨌다는 걸까, 그렇다는 건 내 힘듦은
크지 않는 힘듦이며 버틸 수 있다는 걸까?
좋겠네, 아빠도 있고, 곁에 있으니 없다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겠지, 그럼 날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신뢰가 안 가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나를 안다는 듯이 얘기하는 거니, 제발 내 감정을 아는 체 하지 마, 들리지 않는 위로일 뿐이야, 가짜 위로야 그건.
가시 돋친 말로 사람들을 찔러댔다.
아파 보여서 다행이다. 내 마음도 느껴지려나,
결국엔 듣고 나면 시답잖은 위로를 받을 바에
더 이상 마음을 열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에게 인사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행복해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렇게 행해왔다. 나에게 싹수가 없다고 얘기들 한다. 나의 험담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다들 내가 심각하다고 한다. 그런가, 잘 모르겠다.
꿈에서 아빠가 나왔다.
계속 불러도 뒤 한번 안 돌아봐 주신다.
애타게 부르며 뛰어가려 하면 아빠의 고함소리가
나를 멈추게 했다.
“따라오지 마라 , 더 따라오면 죽는다.”
꿈에서도 나에게 상처를 준다.
“아빠 나 한 번만 봐줘라 , 나 아빠가 좋아하는 아들인데, 자꾸 어딜 보면서 가는 거야”
뒷짐 지면서 걷는 아빠의 모습, 장화를 신은 걸로 보아
어장일을 하시다 온 것 같다. 바다 비린내와 진한 알코올냄새, 내가 맡았던 대부분의 일상의 아빠 냄새,
나에게 다정하게만 대해줬던 아빠가, 꿈에서는 화를 내며 나를 밀친다. 변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걸까,
울었다. 꿈속에서 몇 시간이 흐른 건지 모르겠지만,
보고 싶어서, 만지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소리치며, 바닥을 뒹굴고, 미쳐갔다.
그날엔 비가 왔고, 나는 옷이 더러워졌다.
나를 만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일이 끝나고 들어온 엄마가 자고 있는 나의 팔을
만지며 상처를 확인했다.
엄마의 차갑고 힘없는 한숨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엄마는 돌아서며 방으로 가셨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떠한 꿈도 꾸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갔다.
눈을 뜨니 학교에 갈 시간이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불편한 학교,
뭐가 좋다고 어릴 때 주말인지도 모르고
책가방을 메어 학교 갈 생각에 신나 했을까,
상담 선생님 과의 시간을 가졌다.
꿈에서 아빠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보고 싶다. 아빠가 해준 요리가 먹고 싶다고 얘기했다.
나도 알고 있다. 못 보는 거,
미치지 않고서야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현실은 차가운 심해에 있는 나에게
직면하고 있다. 아니 ,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나는… 알고 있어도 부정하고 싶었을 뿐이다.
선생님은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그런데
볼 수 없다면, 이 세상에 없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잊어야 한다고 생각해, 과거는 너를 족쇄처럼 붙잡게 될 거야, 그게 힘들겠지만, 더 좋은 행복으로 떠나보내는 생각을 해보는 게 어떨까? 너의 아버지가 원하는 모습은 아들이 행복한 모습이니까.”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잊어야 한다는 생각을,
“과거가 저를 계속 괴롭혀요, 아빠는 무조건 적으로 좋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왜 계속 저는 그리워할까요.”
“나빴던 기억 보단 좋은 추억이 더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해, 널 많이 좋아하셨으니까..”
아빠의 좋은 추억이라,
있다. 당연하게도,
아빠는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아끼지 않고 용돈을 주셨다.
맛있는 요리를 해주시기에 내가 닮고 싶어
요리사로 꿈을 결정할 정도로,
아빠를 깊이 사랑했다.
비가 오던 날, 아빠는 담배를 한대 태우시며
물고기를 손질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손질하고 있었다.
“아빠, 안 추워? “
우산을 모자 쓴 아빠 위에 씌워드렸다.
“괜찮다. 빨리 집에 들어가, 냄새난다”
“괜찮아, 그냥 여기 있을래”
“와, 아빠, 오늘은 장어네? 맛있겠다.”
아빠의 요리 중에 가장 맛있다 한 요리가 있다면
나는 장어구이를 택할 것이다.
자연산 장어에 수제로 만든 양념 소스를 찍어먹으면
그날엔 힘이 솟아올랐고 기분이 좋았다.
양념은 완벽하게 기억을 못 하지만
생강, 마늘, 매실, 고추장 등.. 무언가가 많이 들어갔다
“아빠, 나 요리사 하게 레시피 좀 알려줘”
“그래, 네가 좀 커서 요리하게 된다면, 알려주지”
“나 그래도 4학년인데, 계란 프라이랑 라면은 혼자서 할 수 있게 해 줘라, 그거 다칠 수가 없어 아빠”
“안된다, 5학년부터 해라.”
“5학년 되면, 또 미루겠네 아빠 말 들으니까,”
아빠는 내가 다치는 걸 싫어하셨다.
옛날에 왠 미친 관광객한테서 살해협박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목욕탕을 가는 길에 흰 차가 내쪽에 멈춰 세우더니
창문을 내리곤 나에게 “니죽고 나 죽자,” 라며 칼을 들고 협박을 하였다.
나는 얼어붙어 “싫어요, 아저씨 죽기 싫어요”
라고 말씀 드렸지만 , 그 사람은 “그럼 니 손가락 자르고 내 손가락 자르자, 내 손 먼저 자를까?” 하며
자신의 손가락을 창문에 걸친 뒤 칼을 대어 자르려는 시늉을 보고 기겁하며 도망쳤었다.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 사람은 잡혔다.
파출소에서 우리는 모였다.
나는 숨이 잘 안 쉬어졌고, 진정이 안됐다.
곧이어 우리 아빠가 나타났고,
살기가 느껴졌다.
별소리는 안 했지만 아빠는 정말 싸울 기세처럼
보였었다. 아니, 죽일 기세로 보였다.
그 사람이 내게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
“미안하다, 아저씨가 잠깐 취해서 그랬어, 미안해”
아빠가 오셔서 든든하기도 했지만,
왠지 나를 향해 무릎 꿇은 아저씨가 불쌍해 보였다.
“아저씨, 다음부턴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일어나요”
“아저씨가 미안하다. 여기, 추우니까 붕어빵 좀 사 먹어”
지폐 3장을 꺼내 들고 다가오셨다.
“아, 아저씨 괜찮아요, 무서우니까 다가오진 마세요.
저 붕어빵 살 돈 있어요, 정말 괜찮아요.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친 곳은 없냐고 아빠가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당황한 아버지의 목소리와 행동이 피부로 느껴졌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있다는 게,
“우와, 아빠, 오늘 장어 소스 정말 쩐다”
아빠는 미소 지으며 내 말을 따라 했다.
“쫀다.”
“아빠, 쫀다가 아니라 쩐다!”
“그게 무슨 뜻인데?”
“어.. 그니까 엄청나다는 거야, 요새 유행어.”
“그래, 쩐다.”
“응 , 맞아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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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그게 맞다.
더 한 행복으로 이 족쇄를 끊는 것,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를 순 없다.
아빠의 기일마다 눈물을 흘리수 없다.
이 아픔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 상태는 더욱 안 좋아지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다녔던 정신과의 약이 안 받아서,
다른 정신과로 옮겨 다니며 약을 복용했다.
복용하는 약의 수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머리에 기기를 부착한다.
스트레스 수치도 검사했다.
그림을 본다, 그림을 그려본다.
도형을 기억한다. 숫자를 기억한다.
패션우울 같은 게 아니다.
내 감정은 정말 깊어지고, 예민해졌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울전시를 했던 것도 인정한다.
달라진 모습으로 충격을 준 적도 인정한다.
살려달라, 나를 좀 구원해 달라, 신이 있다면 믿겠다.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세요.
이 족쇄를 끊어내고 수면 위로 떠오르고 싶습니다.
이곳은 너무 어둡고, 차갑습니다.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저 이 나약한 한 몸 바처
제대로 살겠습니다. 제발, 제발요.
하늘은 아무 말이 없다.
신은 나의 응답에 답하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지켜내는 것도 벅차다.
아빠와의 멈춰버린 시간도, 엄마와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도,
돌려내고 싶다. 열어주고 싶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나,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지 않을까,
할 수 없다. 하지 못했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정말 할 수가 없다.
사람은 부정적인 기억이 한번 생겨나면
긍정적인 추억이 세 번 생겨야 한다.
행복 7 우울 3, 행복 2, 우울 8 , 우울 10, 우울 10
우울 100, 우울 1000, 우울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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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싶었는데.. 돌아갈 수 있다고 바라왔는데,
감정 제어를 위해 신문지를 찢어버리는 짓도,
약을 먹어 부정적인 기운에서 일시적인 효과를 보는 것도, 이젠 지겹다, 귀찮아졌다.
먹었던 약들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다시 꺼내서 복용한다, 다시 귀찮아져서 버린다.
다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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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아빠 만났어?
“좋아했으니까 만났지,”
그럼 첫 만남은 어떻게 했는데?
“엄마가 길을 걷던 중에 아빠를 만났는데,
부딪힌 건진 몰라도, 서로 가는 길이 같았던 것 같아,“
“뭐였더라, 엄마도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하나 생각나는 건 있어.”
뭔데?
“엄마가 밥같이 먹자고 아빠한테 말했던 거.”
우와, 로맨틱한데?
“그땐 좋았었지, 아빠가 엄마랑 살 때 해준말이 있었거든”
뭐야?
“아빠가 집안 청소 다 한다고 하고, 밥도 자기가 하겠다는 말을 엄마는 안 믿었는데, 봐봐, 아직까지도 지키고 있잖니.”
우와.. 그래서 아빠가 요리하는 거야? 엄마는?
“엄마는 요리 같은 거 잘 못해, 엄마도 너 소풍 갈 때 아빠 가 만든 김밥 같은 거 해주고 싶은데, 잘 못하잖아.”
에이, 그래도 먹을만했어 엄마, 김치만 안 넣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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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보니 술에 취한 상태로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 못 마시는 술은 왜 마셔,”
“엄마.. 잘할 수 있을까, 너희 아빠 없이도,
너 아빠가.. 대학 보내는 거 보고 간다 했더니만..
이렇게 빨리 떠날 줄 몰랐다. 사실, 엄마도 힘들어,
엄마도 그만하고 싶어,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우리 가족 둘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미안해, 내가 괜찮아지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된다 엄마..
“엄마가 많이 못해줘서 미안해, 미안해 아들,”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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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이미 엄마의 일기장을 몰래 본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