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300m

-3- 미지의 공간

by 유빈
아빠, 우리 헤어지는 거 맞지,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차가 멈춰 세워지고 장례식 앞에 도착하였다.

식장으로 가는 도중에 차가운 공기를 느꼈다.

흐느끼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소리에 귀가 예민해졌다.


3일 동안 장례식에서 울다가 자다가 를 반복했다.

식욕이 없어졌고 한없이 우울해졌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자 가장 큰 충격이었다.


아빠의 조문을 오신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는 사람이 나오셨다.

아빠의 사진은 흐리멍덩했다.

찍어둔 사진 또한 없어서, 아빠의 추억을 모른다.

그래서 주민등록증에 나온 사진으로 합성을 했다.

합성한 아빠의 사진은 이상했다.

아닌 것 같았다. 아빠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었다.


또 사람들이 아빠를 보러 와주셨다.

나를 보고 말없이 울며 안아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엄마와 긴 대화를 나눴던 사람도 있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아빠의 사진을 보며

말없이 통곡했었다. 가슴이 아팠다.


섀벽까지 울다 잠에 들었다.

아침엔 찝찝한 눈곱과 함께 눈이 떠졌다.


사람들은 시끄럽게 술을 마시며 떠들었다.

난 그게 너무나도 싫었었다.

나의 기분은 심란한데, 저기 사람들은 웃고 떠들기까지 한다.

하루종일 예민 과의 싸움이었다.


3일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순간에도 우리들은 움직인다.

아직 ,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아빠가 간다,

멀리, 저 멀리 ,

화장대에 아빠를 실었다.


더 이상 아빠의 듬직한 어깨가 없다.

더 이상 아빠와 의 추억을 이을수 없다.

더 이상 아빠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더 이상 아빠와 지낼 수 없다.



아빠가 간다. 저 먼 곳으로 간다.

나는 아빠의 사진을 들고 있다.

태워지고 있다. 추억들이

태워지고 있다. 아빠의 관이

태워지고 있다. 우리 아빠가.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기다리는 순간에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푸르고 주변 나무들은 산들거리고,

새들은 자유로이 날고 있었다.


돌아온 아빠의 관은 뼈만 남았다.

사람의 뼈를 처음 보았다. 생생하게 충격이었다.

뼈를 갈아 가루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렇게 아빠를 들어보았다. 무거웠다.


다시 내 곁에 돌아온 아빠를 들고

우리는 떠났다. 다시 돌아갔다.


아빠를 모시게 된 곳은 적적한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아빠를 뿌려드렸다. 바다를 보시게끔,

가루가 날리며 흰 먼지가 하늘로 솟았다.

그렇게 아빠를 보내드렸다.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졌다.

이제 완전히 아빠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잤다. 그간 쌓인 피로가 누적되어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렇게 눈을 뜨니, 현실로 돌아왔다.

엄마는 힘없이 누워계셨고, 형은 무던한 반응을 보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학교에 돌아왔다.

돌아온 나의 상황을 아는 듯이 친구들은 조용했고,

나는 엎드려 생각을 했다.


"아빠가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고,

엄마는 형과 나의 , 그리고 자기 자신의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움직였다.

엄마의 몸이 안 좋아지고, 아빠와의 사별로 살이 많이 빠졌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찾아 해 멨다.

게임을 했다, 정신없이 그것만 했다.

먹고 싶은 건 먹어야 했고, 하기 싫은 건 안 해야 했다.

그게 편했고, 내가 가장 잊기 위해 한 행동이다.


형은 고등학교로 인해 섬을 떠났고,

나는 홀로 남아 집에 있었다.

더 이상 부모님의 싸움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엄마는 아빠의 술주정 소리를 듣지 않는다.

깨지지 않는 창문과 물건이 제각각 정렬된다.


누구와 깊게 얘기하지 않았다.

애들을 웃기려 애쓰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혼자서 밥을 먹고 방청소를 하고 잠을 잔다.


엄마와의 시간은 멈추고, 나의 시간도 그렇다.

13살이 되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울거나 화를 냈다.

나를 혼내는 선생님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엄마와 교무실에서 면담을 두어 번 진행한다.

괜찮았다가, 안 괜찮고, 좋았다가, 안 좋아진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 알고 싶지 않다.


그렇게 1년이 또 흐른다.

중학생이 되어도 내 시간은 멈춰있다.

서서히 주변 친구들이 나를 떠나는 듯하다.

혼자가 된 물고기는 외톨이가 되었다.


나의 헤엄을 봐줄 또 다른 물고기가 있을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있을까,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반응으로 나를 지나쳤다.


무너져간다. 돌아갈 수가 없다.


도망치기 위해 열심히 헤엄쳐도,

주변의 시야는 암흑이 반긴다.


“다시 좋아지고 싶다. 내 감정이”


상담을 받았다. 상담 선생님은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봐온 사람 같았다.

철저히 무시해서 나를 돕지 못하길 바랐다.

선생님은 나의 말을 듣고 깊이 공감해 주셨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곤 휴지를 주셨다.

드디어 선생님의 입이 열렸다.


“울자 우리,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해.”


가뭄처럼 메마른 나의 눈이 촉촉해진 게 느껴진다.

말없이 5분을 울었다. 눈물이 폭우 같다.


나는 잠시 동안 유광층에 도달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늘 위 먹구름이 게 어지고 잠깐의 빛을 보았던가,

따라가 올라가면 어둠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나, 다시 괜찮아질 수 있을까,

보고 있을까, 우리 아빠,


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도

쉽게 나의 몸이 떠오르질 않았다.

누군가 나의 몸을 잡고 끌어내리는 것 같아서

밑을 봤더니 또 다른 나 자신이었던 것 같다.


아빠의 빈자리는 그리움 보단 갈망에 가까워졌다.

미식별 상태의 우울감이 나를 괴롭힌다.

웃을 수 있는데도 나의 입을 막는다.

좋아질 수 있는데도 나의 생각을 잠근다.


심해에 살게 되었으니 해수면 위를 궁금해하지 말자,

나의 안식처가 여기로 정해진거지,

이렇게 될 운명이 나를 드디어 마주쳤다.

“더 깊게 내려가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끊어버릴 수 있을까, 지금 여기서,

묻어버릴 수 있을까, 지금 여기서,


내가 좋아했던 미술 시간이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갔다 오겠습니다. “

후드티 주머니에 넣어둔 약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두려웠지만, 이 방법이 가장 좋은 게 아니었을까,

나의 새로운 아가미가 숨을 쉬려 한다.

.

.

.

외톨이가 된 물고기는 스트레스에 미쳐

돌틈에 머리를 쥐어박고 자신을 망쳤다.


“드디어 내려갈 준비가 된 것 같다.”



심호흡을 했다.



후드티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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