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100m

-1-

by 유빈
“난 두려움 없이 자유로이 헤엄치고 싶어”.
그러면 내가 얼마나 화려한 물고기처럼 보일까,

부모님이 싸우셨다.

어렸을 적 내 인생에서 부모님은 잦은 횟수로 싸우시곤 하셨다. 형은 자리를 비켜서며 이 상황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자리에서 도망치며 이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툭, 툭,” 눈물이 떨어지고, 숨죽인 상태를 버티기 힘들어 진정이 안된 숨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집안 창문이 깨지고, 물건들이 부서져 나갔다.

피가 튀기고, 욕설이 난무했다.

부서졌다. 부서지고 있다. 깨졌다. 깨지고 있다.

울었다. 그쳤다. 울었다. 그쳤다. 울었다. 그쳤다.


엄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죽여달라며

칼을 내밀었을까,

아빠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엄마를 미워하고 욕하고

하대했을까,


돈 때문인가, 술 때문인가,

아님 나 때문인가,


엄마가 나에게 칼을 들고 오라고 하셨다.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아님 나에게 깨진 유리조각이라도 들고 오라고 하셨다

그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울었다.


아빠가 말한다. 장난감 많이 사 줄 테니, 지금 할머니 집에 가서 자라고 하셨다.

집이 여기에 있는데, 왜 가야 해

장난감은 필요 없고, 그만 싸워요. 제발


나는 당시 8살이었다.


학교에 갔고, 웃었다. 재미있었다.

받은 용돈으로 제티를 사거나, 불량식품을 구입하였다

가장 친한 친구들과 우유에 제티를 타먹거나,

사탕과 스낵류, 익숙한 간식들을 나눠먹곤 했다.

수업시간에 몰래 먹는 간식들은 달콤했다.

소리를 죽이며 하품하듯이 사탕을 입에 넣었다.

혀로 굴려 녹였고. 눈이 마주친 친구와 웃었다.


쉬는 시간에 나의 장난스러운 연기력으로 그때의 상황을

재현했다. 친구들이 웃어줘서, 고마웠다.

고마워서, 나도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가, 청소시간에 몰래 먹은 과자 봉지에 나의 근심과 두려움도 같이 넣어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친구들은 나의 전부였고, 없어선 안 됐다.

한 명이 없는 날이면 허전하고, 그리웠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이 간절했고,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내 친구들은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굣길, 나는 집에 걸어가고 있다.

엄마가 바닥을 보며 걷지 말라고 하셨는데,

잘 안 고쳐진다. 앞을 보며 걸으면, 발에

뭐가 걸릴 것만 같고, 넘어질 것 같으니까,

또 뱀이 나타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여 바닥을 보는 것 같다.


“물리면 많이 아프겠지? 마비된 내 몸은 돌돌 말려

입속으로 버려지는 걸까? “


집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문이 무겁게 느껴진다.

열었지만 방안은 고요했다. 동굴처럼 목소리를

내뱉으면 울릴 것만 같았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허공에 대고 말하였다.

책가방을 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깨진 창문은 적나라했다.

벽지에 튀긴 피도, 정돈 안된 방안도 전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척,

웃고 지내면 복이 온다는 말을 믿고 싶었기에,

내면을 숨겼다, 가면을 썼다.


파도들은 잔잔해져 평화로운 바다가 된다.

그리고 나 또한 이 불행의 유한성을 인지한다.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다.

터질 거 같은 이 순간의 감정도

불편한 사이의 답답한 마음도


매번 큰 파도의 조짐이 보일 때마다

시한폭탄을 껴안는 불안감 이어도,

경찰관 분들의 다독임 에 눈물을 보여도,


언젠간, 언젠가는 꼭 끝이 난다.


우리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 셨다. 매일 하루마다 담배 두 갑을 태우셨고, 안주 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어장일을 하시는데 벌어들이는 수익이 고정적이지 않았다.


저녁 늦게 도착하곤 술에 취해 엄마에게 욕을 한다.

그 작은 초록병이 아빠를 그렇게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아빠는 우리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는 게 아닐까,


매일 새벽 5시쯤에 일어나 일을 나갈 체비를 하신다.

어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저녁을 준비하신다. 요리실력이 굉장하다. 식당을 했어야 할 정도였다.

가족들은 아빠의 밥을 먹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나는 항상 두 그릇 이상을 먹었고, 너무 맛있다며

아빠에게 엄지를 들어 보인다.


파도가 치는 횟수가 잦을 뿐이지,

우리 가족은 잔잔한 바다 위의

햇빛을 만끽했던 적이 있었다.


몇 번 학교에 갔다 오면 서로 화해한 모습이

내 눈에 보일 때 느끼는 안도감,

그렇게 내 기분이 다시 물장구를 친다.


아빠는, 나에게만 잘해주셨다. 나만 바라보셨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미우면서도 밉지 않았다.

날 아빠가 미워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별은 급작스럽게 이뤄진다.


12살 무렵. 평소같이 방안에 누워있는데

아빠가 병원을 가신다고 하신다.

평소에 아프셔도 병원 한번 안 가셨던 아빠가

병원으로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의아했다.


그리고,


나는 수면아래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