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프게 사랑해
미지의 생물에 공포와 무력감을 느낀다.
지금의 내가 거울을 봤을 때처럼,
죽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었다.
한참 새벽 시간에 깬 것 같은데,
시간을 보았다.
대략 15시간 정도 지나있다.
보통 7~8시간 잤으니, 두배로 잤구나,
베어낸 상처의 피는 이불과 함께 굳어있었다.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실까,
그래,
일어난 김에 살자.
물을 마시려 일어났다.
뒤척이던 중에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가슴이 당길 정도로 심한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곧 있음 학교에 가야 하구나,
복귀까지 4일 남았었다.
거울을 봤을 때 내 모습은
웃음기가 사라진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무서워졌다.
틈만 나면 아무렇지 않게 팔을 그어대는 것도
이젠 숨을 쉬기 위해 그런 건지, 습관 처럼 된 건지,
피부에 새긴 흉터가 답해주려나,
송골송골 맺힌 피가 답해주려나,
칼을 붙잡은 손에게 물어보면 될까,
엄마는 새로 생긴 상처에 대해 묻지 않는다.
고마워졌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아무 말도 나누기가 힘들어졌다.
엄마에게 화만 낼 것 같아서,
형이 군대에 갔다.
나와 다섯 살 차이 나는 우리 형,
5년이란 시간의 차이는 감정에도 드러난다.
형은 아빠의 부재로 슬퍼했던 기간은 짧았다.
장남의 무게인 건지,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님, 아직까지도 힘들어하는 건지,
잘 드러내지도 않아서, 알기 힘들다,
나에게 남겨놓고 간 말은
엄마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이제 내가 엄마를 챙겨야 한다고, 얘기했다.
난, 그렇게 못할 거 같다.
이러구러 지낸다, 우리들은,
잘 지내는지, 못 지내는지, 판단이 안 선다.
학교에 복귀를 했다.
친구들은 나를 반겼지만, 사람을 보는 게
더 이상 힘들어졌다.
웃는 모습을 봐도, 같이 얘기를 해도,
어딘가에선 내 얘기가 떠돌고 있을 것 같고,
나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을 줄 것만 같다.
친구들은 날 걱정해 줬다.
고맙지만, 더 이상 못할 거 같다.
같이 있으면서도, 좋은 분위기 속에도,
나는 너희들을 불신할 것만 같아.
내가 없어지는 게,
눈엣가시 하나 없어지는 느낌이겠지,
기회가 된다면, 보면 좋겠다.
괜찮아 지고선, 너희들에게 말할게,
그때의 나를 견뎌주어서 고마웠다고,
“엄마, 자퇴하고 싶어,”
“아들아, 조금만 견디면 안 되겠니,? “
“못할 것 같아,”
“열심히 하겠다고 했잖아, 감정도 제어 잘했잖아, 왜
갑자기 그만두는 거야? 엄마한테 얘기 좀 해줘. “
“미안. “
“엄마 너무 걱정돼, 네가 어떻게 할 건지,“
“미안해, 못하겠어,”
“하….”
“사람을 보는 게 예전같이 즐겁지 않아 졌어, 두려움도 커졌고, 무서워졌어, 사람 많은 곳,”
우울증이 심해지며 혼잡한 공간에 가면 머리가 아파왔다. 숨을 못 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머무를 수 없었다.
“자퇴하고 어떻게 할 건지 계획해 놨니?”
선생님이 물으셨다.
“잘 모르겠지만, 잘 해내볼게요.”
“어머님, 요즘.. 자퇴하고 있는 학생들이 늘고 있기도 하고, 자퇴 후 열심히 잘 사는 애들 제가 많이 봐왔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아들 한번 믿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선생님은 내 편이었다.
“네.. 저희 아들이 자퇴 후에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다면.. 저도.. 그렇게 할게요.”
엄마는 말씀 도중 고개를 숙이며 우셨다.
“미안해, 못 버텨서 미안해,..”
엄마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교무실에 가서 잠깐이었지만 감사인사를 드리고
교문 밖을 나오려 했다.
“나가서 기회 되면 보자!!, 안녕,”
“잘 가, 보고 싶을 거야,”
“안녕, 또 보자,”
엄마의 떨리는 손을 잡고 학교를 나왔다.
나는 자퇴생이 되었다.
자퇴 후 엔 작게 지내는 원룸을 왔다.
엄마와 함께 지내며 , 평소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잤다. 자고 난 뒤에는 또다시 아무것도 안 했다.
게임방, 집, 게임방, 집, 반복했다.
친구들과 의 연락이 뜸해지고, 혼자 지냈다.
혼자 지내면서, 불만 갖지 않았다.
“나 너 집 가도 돼? “
“이 시간에? 왜??”
“그냥~, 너 잘 사나 봐야지,”
이 얘기는 내가 자퇴하기 전에 이야기다.
“안녕, 집에 딱히 뭐가 없어서, 대접할 게 없다. “
“괜찮아, 나가자,”
“어디로?”
“일단 나와봐, 그때 알려줄게,”
유치원 때부터 친구사이인 나는, 처음으로 내 친구가 뭘 하려 하는지 가늠이 안 갔다. 도착한 곳은
햄버거집이었다.
“패밀리 세트로 주세요,”
두 분이서 드시기에 좀 많은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얘가 많이 먹어요.”
“웬 햄버거집이야? “
“그냥~ 너 좋아하잖아,”
최근에 맛있다며 말했던 햄버거집에 친구가 데리고 왔다. 우리는 패밀리 세트를 들고 한적한 공원에 왔다.
“여기서 먹자!”
“그래, 조용하고 좋네,”
친구와 함께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근데, 우리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뭐긴, 햄버거 먹지 ㅋㅋ”
“아.. 그건 맞는데, 나 보러 온 게 밥 먹으러 온 거였어?”
“다른 이유가 있겠냐, 봤으니 됐다! “
“…”
무언가 용무 있어 찾아왔을 법했는데, 아니었다.
나랑 친구는 정말 햄버거만 먹고 길을 걷다,
시답잖은 얘기만 하다 헤어졌다.
그리고 친구의 방문은 잦게 이뤄졌다.
“오늘은 라멘 먹으러 갈까?”
“그러든지,”
“끝나고 노래방도? 고고?”
“좋다 “
또다시 친구와 라멘을 먹고, 노래를 부르며, 웃고 떠들며 카페를 가고, 그렇게 헤어졌다.
“다음에 또 보세~“
“안녕, 재밌었어.”
“나도,”
“난 그럼 간다~“
“안녕.”
안녕..
예전엔 항상 내가 애들을 모아 놀았었는데,
이번엔 친구가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밥을 먹고,
우리는 헤어진다. 반복한다. 그리고 지루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난다. 나는 재미있단 감정을 느낀다.
행복하단 감정을 느낀다.
나의 자퇴 소식을 들은 친구는 별말이 없었다.
그리고 자퇴 문제로 형과의 인연은 거기까지 이어졌다
.
.
.
“너 학교 조금만 버티면 안 되겠냐,”
“미안, 못할 것 같아.”
“제발 사람 답게좀 살아, 오죽하면 형이 너에게 부탁을
하겠냐고, 생각 좀 해. “
“그냥 못하겠어.”
“그럼 졸업만 해보자,”
“안돼, 싫어, 하기 싫어, 학교 다니는 거,”
“아 제발, 동생아.. 형 지금 군대에서 시간 내서 전화한 거야, 소식 듣고, 얼마 통화 못하니까 이번 한 번만 형 말 좀 듣자.”
“나.. 안돼.. 난.. 안돼.. 그만할래,”
“나랑 장난하는 거 아니지, 너 자퇴하고 뭐 할 건지 생각도 안 해놨을 건데, 이렇게 얘기하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
“그냥 알아서 할게, 나한테서 신경 꺼,”
“너 이 전화 끊으면 , 자퇴하면 형이랑 더 이상 형동생 하지 말자는 걸로 알아들을게, 나랑 끝인 거야, 넌 내 동생 취급 안 하는 거야.”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형 말이 맞다.
난 준비 안된 상태에서 그만두었고,
계획도 없는 사람,
군복무 중인 형에게 상처를 주었다.
주변과 단절되는 삶을 살게 되더라도,
내가 살 곳 한 곳은 이 바다 어딘가 있을 거야,
난, 보란 듯이 잘 이겨내고 보여줄게,
이 아픔을 떨쳐낼 기회가 생기길,
그리고, 형, 잘 지내. 미안해,
수심, 알 수 없음,
그러나 생존중.
어김없이,
무언갈 찾는 중.
“기억은 날 더 괴롭게 하지만, 난 아직 부족해, 이 고통이 더 이어져야 해, 그래야 난 죗값을 치를 수 있어. “
잘못된 건 없다.
이곳을 벗어날 모든 행동을 혼자 할 것이다.
혼자 이겨내서, 살아남을 거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길, 살 수 있는 길,
생존을 위한 나의 헤엄,
숨을 쉬기 위해 정신없는 아가미,
“태어난 김에 살아도 보는 거야,”
“다신, 죽지 않을 거야,”
“고통받은 세월이 아까워서 라도, 그렇게 라도.”
공부는 원래 못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 졸업장을 위해,
남들과 동일한 길을 걷지 못해도,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가 없어야 한다.
남들은 하늘을 날고 싶어 하지만,
나 역시 동일한 열정으로 이 바다를 여행할게,
그리고 너희들은 내가 물살을 가로지르고,
높이 뛰어오르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게 될 거야.
너흰 날아, 하늘을 넘어,
아가미로 숨을 쉬지 않는 게 뭐 어떤가,
헤엄칠 지느러미가 없어도 뭐 어떤가,
눈이 달려있지 않아도 뭐 어떤가,
손과 발이 남들과 적어도 뭐 어떤가,
괴생명체가 되어도 뭐 어떤가,
자퇴한 게, 그게 뭐 어떤가?
아무 생각 없는 게 뭐 어떤가,
사랑하지 않아도,
알바에서 잘려도,
하루하루 힘없이 살아가도,
그것들이 너희들이 바라보기에
물고기가 아닌 것이고,
사람이 아닌 것이며,
어떠한 존재도 아닌 것인가,
증명하면 될 것 아닌가.
나는 바닷속 물고기라는 걸,
자퇴 후 1년간, 내 일생의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한 달간 검정고시 준비를 했다.
“아들, 잘하고 와, 엄마는 너 믿어.”
“고마워,”
8월, 검정고시를 보러 창원에 갔었다.
여기엔 내 또래의 친구들이 많아 보였다.
시험을 치고, 도시락을 먹고,
어렵든, 쉽든, 찍거나 풀어낸다.
상관없어, 떨어지면 다시 하지 뭐,
그리고 난 받게 됐다.
수료증, 합격,
“해보니까, 되긴 하네.. “
“다행이야,”
“이제 뭘 하지,”
“모르겠다, 일단 살자. “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아직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곁에 있는 엄마와 간단한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감정을 느꼈다.
감정은 나에게 경험이 되어줄 수도 있지만,
제어장치가 없는 나에게 사람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경계하고 조심할 수밖에,
주변에 물고기도, 생물도 없어진 지
2년이 넘었다.
어른들은 부담됐고, 친구들은 불편했다.
외롭단 감정은, 이제 잘 못 느끼겠어,
그게 내 일상의 일부가 되어줬는걸,
과거의 나야, 보고 있어?
난 아직 죽지 못해 살아.
그래도 , 좋은 소식 있으면,
아빠에게도 전해줘,
꼭,
.
.
.
보였다.
꿈속에서 아빠를,
아빠는 창백해 보였지만, 집안을 둘러보시곤
청소를 해야 한다며 청소기를 작동시키려 했다.
옆에 서있는 내 모습 인지 못한 체,
놀란 가슴 부여잡고 한번 불러보려다
일어나졌다. 눈이 떠졌다.
눈가엔 눈물이 촉촉하게 남아있고,
나는 또 고갤 숙였다.
“안 좋은 꿈 꿨어?”
엄마가 물었다.
“응, 근데 좋은 꿈이 될뻔했어. “
“뭔데? 엄마한테도 말해줘.”
“나중에, 내가 말해줄 상태가 되면. “
“아빠, 있는 곳에 가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그 선택은 올바르지 못했으니, 조금 있다 보러 가도 될까, 여기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어, 종종 아빠가 보게끔 재가 되어 날아갈게, 나랑 형 대학은 보낸다고 했던 우리 아빠, 그 약속 못 지켜서 꿈에 나타나준 거야? 지난 지가 언제인데,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하지 말라는 담배도 태우고, 술도 마셔봤지만, 용서해 줄 거지? 보고 싶어서 그래봤어, 생각보다 쓰고 맛없더라, 그러게.. 안주 좀 같이 먹으라니까, 나 치킨 먹는 것만 보고, 난 아빠 이제 목소리 들을 수도 없고, 만질 수 없다는 거 알아, 이제야 좀 실감이나, 하나 확실한 건, 난 볼 수 없지만, 아빠는 나를 보고 있다는 거, 두 번째로 확실한 건, 난 아빠를 잊지 않겠다는 거, 가슴으로 품을 수 있다는 거, 세 번째로 , 이건 바라는 건데. 난 한번 더 태어나도 아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날래, 다시 한 번 더 두툼하게 굳어진 고된 아빠의 손을 잡으러, 다시 나타날게, 정말, 아프게 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해요 진짜… 사랑해요…
사랑받을 수 있어서, 사랑을 줄 수 있어서, 사랑해요..
편지는 천천히 손끝까지 탔다.
편지를 놓았고, 재가되어 날아갔다.
아빠의 재를 뿌려둔 곳을 향해 웃어 보이며
좋아하시던 에이스와 좋은 데이를 두고 떠났다.
손을 흔들고 고개를 돌아 아빠에게서 멀어질 찰나,
“빈아,”
아빠만 그렇게 불렀던, 낯익고 따뜻하고, 간지러운
그 말,
아빠 목소리,
들었다. 들어서, 고마웠다.
놀라서 뒤돌아봤지만,
안 보이지만, 바람에 흔들린 나뭇가지가
손을 흔들어주는 것 같고,
은은한 바다내음,
아빠의 냄새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터져 나올 눈물을 삼키며 방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역시 거기 그대로 있을 줄 알았어, 안녕..”
나는 돌아갔다. 집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믿지 못할 상황을 혼자 겪으면, 아무도 안 믿겠지.
믿지 않아도 돼, 내속에 살아있단 걸 난 느꼈으니까,“
.
.
.
.
바다는
잔잔하게 노래 불렀다.
.
.
.
.
.
.
.
아빠의 자장가처럼.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