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나는 오늘 죽었다.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이승에 대한 미련이 있으십니까,”
날 바라보는 저승사자가 말했다.
“딱히 남길 말이 없네요. “
“5분 남으셨습니다.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죽음을 수용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5분이란 시간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나의 호흡을 느낀다.
짧은 숨은 점차 깊어지고, 눈의 초점이 풀린다.
차가운 몸과 온몸엔 근육의 힘이 빠지며,
느슨한 상태로 하얀 조명빛 천장을 바라본다.
“혼란스럽진 않으십니까,”
“터널 속을 달리고 있어요, 끝엔 빛이 다다르고 있고,
제 몸이 그쪽으로 끌려가는 것만 같아요. “
푸른빛의 터널, 주변의 인식이 끊어져간다.
한걸음 내딜때마다 추억 속의 장면이
스치듯 빠르게 눈앞에 재생된다.
나의 삶을 재반복한다.
테이프는 계속해서
돌아가고만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련이란 감정이 생긴다.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은 날 강하게 짓누른다.
미련의 감정 위에 업힌 두려움도 배가되어 다가왔다.
“죽음은, 무서운 거구나,”
“가장 뜻깊은 날이기도 합니다. “
희미한 빛 앞에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느려지고 있었다.
한걸음, 그것의 반, 그것의 반의 반,
나의 보폭은 빛과 가까워질수록 느려진다.
그리고 또 다른 저승사자가 나타나 문 앞에선
저승사자를 말렸다.
“저 아이를 한 번만 살려주게,”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은 삼가심이..”
“나의 권한을 전부 그대에게 넘기겠네,“
“어찌하여 저 망자의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겁니까,“
“단순한 망자가 아니다. 사정을 보고 유예기간을 주게나,”
나타난 다른 저승사자는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눈은 오로지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저를 막으신 이유가 뭐예요?”
“넌 재주가 넘치고 많은 사람들의 빛이 될 수 있다. 못다 한 일들이 산떠미로 남아있지 않느냐, 어째서 죽음의 문턱에 서선, 아무렇지도 않은 태평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느냐,”
“저도 코 앞까지 오기 전엔 이런 생각이 들 줄 몰랐다고요. “
“그럼 앞으로 다시 살게 된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이 빚을 전부 다 갚진 못해도, 이승에선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던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그가 바라던 모습으로 나타나 보여주고 싶어요.”
“그자가 뭐라 하였느냐,”
“건강하게만 살아달라고요.”
“저승에서 줄 수 있는 기회는 전부 다 소모되었다. 다음에 다시 찾아왔을 땐,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게나, 돌아가게 되어 다행이구나. “
나의 몸은 점점 새하얀 빛이 감돌며 푸른색이었던 터널은 금세 주황빛으로 물들어갔다.
몸이 붕 뜬 채 의지와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저승사자를 바라보았다.
“다음에 아프면 , 도와줄 수가 없다. 부디, 무탈하고 건강하게만 살아라.”
저승사자의 모습이, 생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바뀌었다. 이내 다리부터 천천히 재가되어가고 있었지만, 그자의 눈은 오직 나만을 향하고 있었다.
“미안해..”
소진된 비디오테이프가 다시금 거꾸로 감긴다.
과거의 추억들이 역재생되어 어릴 적 시절로 돌아간다.
빠르게, 나는 그 터널에서 벗어났다.
희미해진 눈이 다시 초점을 잡는다.
정상으로 돌아온 호흡,
서서히 달궈지는 체온,
다시 보이기 시작한 천장의 하얀 조명.
그리고, 날 바라보는 가족들,
나는 오늘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다.
다신 죽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죽어있던 메마른 감정에
하얀 불씨가 지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