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를 세운다는 것
“가장 큰 자유는,
마음이 운명을 넘어설 수 있을 때 온다.” –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친구도, 명예도, 지위도. 로마의 고위 관리였던 보에티우스는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반역자가 되었고,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죄수가 되었다.
모든 삶이 무너졌다.
그러나 그는 그 감옥에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글을 썼다.
그 책은 고통의 기록이 아니다.
탄식이나 복수의 다짐도 아니다.
그건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사유와 손을 잡은 기록이다.
보에티우스는 묻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운명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나는 정말 모든 것을 잃은 걸까?”
그때 철학이 나타나 그에게 조용히 말한다.
“운명은 언제나 움직이는 바퀴와 같다.
너는 단지, 바퀴의 아래로 내려온 것일 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멈췄다.
그래, 우리는 종종 바퀴 위에 올라간 줄로 착각한다. 그러나 바퀴는 돌고, 인생도 돌고, 행복과 불행은 내려올 것을 전제로 오르는 것일 뿐이다.
보에티우스는 말했다.
“운명이 너에게서 가져간 것은 많지만,
네 안의 중심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
그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는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나의 생각, 선택, 태도만 붙들었다.
나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내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되묻게 된다.
누군가의 인정에 있었던가?
결과에 있었던가?
그렇다면 나는, 운명이 바람만 스쳐도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보에티우스는 감옥에서 철학을 붙들었고,
지금, 그 철학 안에서 마음의 고요한 회복을 배운다.
그러므로 절망은 끝이 아니다.
절망은, 존재가 자신에게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극복하려는 마음에는 보에티우스처럼
철학이 깃든다.
보에티우스가 감옥에서 배운 것도 그것이었다.
그 어떤 체념도 사유를 가두지 못했고,
그 어떤 절망도 그의 질문을 꺾지 못했다.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아는,
고요하지만 단단한 회복의 힘.
그것이 바로,
심연의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