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흔들리며 중심을 배운다"

「대나무의 삶」

by 루치올라
대물림


어느 날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아이는 아직 청소년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아빠부터 시작해 미워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고 했다.

“미움”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하는 마음,

미움이 습관이 되어 일상으로 자리 잡혀 가고 있었다.

습관으로 자리 잡은 미움이 일상에 완전히 자리 잡게 된 원인을 찾아가 보니 그곳에는 아이의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남편뿐만 아니라 친척, 이웃할 것 없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었다.

늘 신세를 비관하고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찬 눈과 입,

몸 전체에서 나쁜 기운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대물림이다.

아이의 엄마는 또 자신의 엄마에게서 감정을 물려받았고 받았던 감정을 아이에게 확대 재생산시켜준 것이다.

대물림, 끊어지지 않는 고통의 끈이다.

지옥이 따로 있을까.

눈떠서 잠드는 순간까지 온통 마음에 들지 않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을 피할 수 없이 보며,

삶을 버텨야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원증회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원증회고(怨憎會苦), 란 불교용어의 팔고의 하나로 원수와 함께 살지 아니할 수 없는,

괴로움과 싫은 환경에 살거나 싫은 일을 하며 함께 만나 살게 되는 고통.


내 삶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다.

속담에서 전하듯 외나무다리는 피하고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엔 마주치는 상황과 만나게 된다는 것 내가 살아 있는 한,

내가 함부로 대한 내 삶은 언젠가는 반드시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함부로 대한 마음,

함부로 대한 몸,

마주하고 싶지 않다고 도망쳐도 소용없으니 지금

당장 내가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부터 멈춰야 한다.



비슷했던 거야

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리석 바닥이 아닌 두꺼운 이불에 떨어졌어도 깨졌을까?

유리컵은 깨지는 속성이 있다. 대리석도 깨지는 성질이 있다.

같거나 비슷한 성질이 부딪히면 깨진다는 깨달음이 확,

와닿는 순간이었다.

똑같으니 싸우지, 이 뜻 이제 확실히 알 것 같다.




법정 스님

“원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미움이 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