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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거 Aug 21. 2024

'배앓이'가 아니라 '배고픔'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마지막날, 다시 말하자면 집으로 가기 하루 전 날, 엄청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들은 모두 '잘할 수 있을까?',  '괜찮을까?'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특히나 외부인을 집에 들이기 싫다는 내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와이프와 나, 우리 둘이 온전히 숲이를 돌봐야 함에 더욱 두려움이 컸었던 것 같다.

 '당장에 내일 집에 가기 전 예방접종을 가야 하는데 과연 숲이가 잘 버텨줄지',

'신생에는 잠깐 차에 타는 것도 2박 3일 여행정도의 피로도 라는데, 숲이가 30분 이상 차를 잘 타줄 것인지',

'집에 가서 목욕은 과연 시킬 수 있을지'

'똥 뒤처리를 잘할 수 있을지'  등등 굉장히 많은 생각들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퇴소날(집에 가는 날)의 해가 떠 올랐고, 우리 셋은 당당히 산후조리원을 떠났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 아니 이게 웬걸! 숲이가 너무 순한 거다! 전혀 울지도 보채지도 않았다. 그렇게 1차 위기 예방접종의 순간!

숲이는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부터 약 3초 정도 울었고(사실 시간은 울었다기보다 소리 지른 정도...),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다시 잠에 들었다..

 병원진료 후 집으로 이동하는 길,

군포에서 화성까지 가야 하기에 거리와 시간이 꾀나 걸리는 데다, 처음 타는 카시트에 불편함을 느낄 만도 한데 숲이는 무슨 일 있냐는 듯 '아주 잘'자면서 집까지 왔다.


드디어 집에 도착! 낯선 공간에 처음 왔기에 어색할 만도 한데, 숲이는 적응의 시간도 필요 없이, 아주 잘 자고, 잘 먹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낮과 밤이 바뀐 것 빼고는 정말 아무런 이슈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당연히 이렇게 생각했다. '선이는 갓기였구나!! 그리고 우리도 꾀나 아이를 잘 돌보는구나'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둘째 날 낮에도 숲이는 너무나도 천사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나는 산후도우미를 부르지 않기로 한 내 선택을 스스로 응원하게 되었으며, '잠이 부족한 거 빼고는 괜찮은데?'라는 아주 교만한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둘째 날 밤이 되었다.


 밥 달라고 할 때 빼고,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던 숲이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밥을 먹은 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아 밥 먹을 때도 아니고, 기저귀도 문제없었으며, 집안의 온도와 습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데 운다!


 그 순간 우리 부부의 머릿속은 '배앓이' 즉 신생아 산통 꽂히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낮에 분유 먹으면서 공기를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닌가?' '똥이 딱딱하던데 유산균 문제인가?' '자기 전에 너무 급하게 먹던데, 우리가 트림을 잘 못 시켰나?' '아이 빨기 반사 같은데 공갈 젖꼭지를 써야 하나'? 등등 고민과 함께 아이를 달래며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숲이는 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천사로 돌아왔다. '배앓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끔찍한 밤을 보내지 않도록 낮부터 준비를 했다. 분유를 먹을 때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썼으며, 배앓이가 없는 젖병도 구입했다. 틈틈이 장마사지도 해주며 가스 분출을 시켜주려 노력했고, 완벽한 소화를 위해 트림도 30분 이상시켜주었다. 그리고 숲이는 완벽한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내고, 목욕까지 아주 순한 모습으로 끝냈다... 그렇게 셋째 날을 마무리하는 12시로 시계는 향하고 있었다.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킨뒤 우리는 숨죽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으아아아아앙'  엄청난 울음소리가 우리의 귀에 꽂혔다. 정말 무기력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숲이의 울음소리와 밤을 보내고 아침이 밝았다. 숲이는 또다시 완벽한 천사로 변해 있었다.


 와이프는 아이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다며 밤이 두렵다고 했다. 나는 '낮에 이렇게 잘 지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복'이냐며 와이프를 달래고 위로했지만, 나 역시 밤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틀밤의 과정을 다시 차분히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숲이가 울음을 멈춘 순간들은 '분유를 먹은 다음'이었다. 그 순간 결심을 했다.


 '배앓이고 뭐고 수유텀이고 상관없이 오늘밤에는 울음이 커지면 일단 먹여본다' 각오는 했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숲이는 이미 다른 신생아 대비 50프로 정도 많은 분유를 먹고 있었기에, '분유를 추가로 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밤이 왔다. 역시나 숲이는 우렁찬 울음으로 새벽의 적막함을 깨부수었다. 그리고 우리는 숲이를 달래기보다 분유를 먹였다.


이게 웬걸... 아이가 너무 평온하다.... 그렇다고 분유를 계속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분유 100미리로... 우리의 모든 고민과 걱정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숲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배고에 울부짖는 아이에게, 너무 과식해서 소화를 못 시키는 것' 아니냐며 밥을 안 주었으니...


그렇게 우리에게 평온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제야 분유를 많이 먹는 숲이를 걱정하는 와이프에게, 관리사님이 해준말이 떠올랐다.


'걱정하지 마세요. 산모님, 우리가 지켜보니 숲이는 절대 분유를 탐내지 않아요. 딱 자기 양만큼만 먹어는 아주 점잖은 신사예요'


 그리고 이틀 동안 집중했던 '배앓이'관련 정보, '아이들이 밥 먹는 텀을 지켜줘야 한다는 이야기', '양이 너무 많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 등이 아닌

'신생아는 스스로 양을 정한다', '정해진 수유 텀은 없다, 밥 먹는 시간은 아이 스스로 정한다'  등의 정보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안이 강해지면 그것에 집중해서 다른 정보들이 보이지 않는 게 맞다. 애초에 사람의 뇌가 그렇게 세팅되어 있으니,

 앞으로도 비슷한 실수를 계속하겠지만, 그때마다 계속 잊지 않도록 다짐해야겠다.


'우리의 판단이 숲이의 생각은 아닐 수 있다, 수많은 정보들에 집중하기 전에, 숲이가 바라는 것을 파악하는데 더 집중하자'


 신생아를 돌보면서 배앓이에 고민하시는 분들 참 많으실 것이다. 나는 확언할 수 있다. 그중 상당수는 우리 부부와 같이 부모중심의 생각으로 '배고픔'을 '배앓이'로 착각했을 수도 있음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마디 더 하자면, 부모의 의중으로 '배앓이'를 '배고픔'으로 착각할 수도 있음을, 즉 배앓이냐, 배고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더 신경 써야 함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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