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거 Aug 21. 2024

'산후우울증'에 대한 고찰

산후우울증, 통상적으로 '출산 후 4주 이내에 오는 산모의 심각한 우울감정' 정도로 대략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의학블로그가 아니니 거창할 것 없이 말하자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느끼는 엄청 괴롭고 힘든 감정'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은, 숲이가 태어난 지 41일째,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지 대략 3주를 지나고 있는 시점이다. 제목을 산후우울증에 대한 고찰이라고 거창하게 썼지만, 이는 논문적 글쓰기의 습관이고, 내용은 이 기간 동안 이 산후 우울증이란 것에 대해 느끼며 생각한 점들 써보려 한다.


 우선 '처음이 주는 두려움'이 산후우울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의 감정을 느낀다. 물론 처음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 없이 설렘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육아란 것은, '엄청난 책임감'이 동반되기 때문에, 저 설렘의 감정보다 두려움의 감정이 극도로 커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분유를 먹인 아이가 갑자기 토할 때' ,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 때', '기저귀를 갈려고 아이의 다리를 만지는데 뚝하고 뼈 움직이는 소리가 날 때', '똥을 싸서 물로 씻기려 하는데, 항문에 묻은 똥이 안 닦아질 때' 등등, 처음 하는 것들에 대해 당황하는 순간이 생길수록 설렘의 감정이 두려움으로 바뀌고, 그것이 누적될수록 자신감은 결여되며 이 끝은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라는 자책과 함께 무기력이 동반된 우울이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초반의 육아는 '비어적 표현의 절정'이란 것이다. 초보 부모가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아이의 의사 표현중 유일한 것은 '울음'일 것이다. 이 '울음'하나로, 아이의 모든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즉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최선을 다해 표출하지만, 부모는 본인이 그것을 잘 알아듣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저 만연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추측을 해서 아이에게 끊임없는 임상시험을 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명확한 니즈를 파악학 수 없는 상태에서 추측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실패'가 따라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이치라는것을 부모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이의 울음에 대한 답으로 부모인 내가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데, 그에 대한 아이의 답변이 더욱 커진 울음이라면,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아이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것을 제공해줘야 한다면??? 이 과정을 육아가 아닌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회사 상사가 말은 안 해주고 화만내서 내 나름으로 결과물을 가져갔는데, 더욱화를 낸다, 아무리 괴로워도 나는 계속 결과물을 가져가야 하고, 최악은 나는 이 상사를 미워할 수도 없다. 왜? 첫째로 내가 결과물을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둘째로 그 대상을 미워하게 되는 순간 나는 굉장히 자격이 없고 모진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내 삶이 없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는 순간 기존의 내 생활 대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회사생활은 물론이며, 친구들과의 관계, 흔한 집 앞 산책조차 포기(좋게 표현해서 유보)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많은 것을 제쳐둔 채로 육아에 집중하는데, 생각보다 내 뜻대로 되는 것들이 많지가 않다. 그 순간 '과연 예전의 내 삶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엄습하는 순간, 위에 이야기한 첫째 이유와, 둘째 이유와 더불어 우울감은 극한에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한의 체력저하'에서 오는 본능적인 분노감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하루 중 아이를 안아줘야 하는 경우가 많고, 아이는 오래 안고 있을수록 더 무거워진다. 아이를 안고 있을 때 아이가 움직이면 부모는 힘을 몇 배로 써야 한다. 힘을 잘못 쓰면 아이가 다칠 것 같은 불안감이 오기 때문이다. 단순히 힘을 쓰는 것뿐 아니라, 해야 할게 많다. (숲이기준) 아이는 대략 하루에 8번 정도 분유를 먹으며 분유를 먹인 뒤 최소 10분 정토 트림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하루에 15번 정도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고, 응아를 할 경우 엉덩이를 물로 씻어줘야 한다. 웬만 바면 하루에 한 번 목욕도 시켜줘야 하며 투정을 부릴 때 놀아줘야 한다. 사용한 젖병은 설거지와 소독을 해줘 하며, 아이를 위해 사용한 빨래거리도 하루에 꾀나 큰 양이 나온다. 무엇보다 최악인 건 '잠'을 잘 시간이 굉장히 부족하다. 군대에서 8시간 취침시간 중 2시간짜리 야간근무가 두 번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

 즉, 부모의 체력이 극한에 갈수록 그 우울감은 커져만 갈 것이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조금 하려 한다. 혹시 뇌 기관중 '편도체'를 아는가?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 편도체의 역할은 '생존'과 관련이 있으면, 생존을 위해 위험에 대응하려 '내가 경험했던 안 좋은 일들'을 저장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편도체의 힘은 뇌의 어떠한 기관보다 굉장히 '막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쉽게 말하자면, 뇌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서로 다른 곳에 저장한다. 나쁜 기억을 저장하는 공간이  '편도체'이고 이 편도체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내가 뇌과학자가 아니기에 사실과 조금은 다를 수 있으나, 한 번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자.

이 글을 읽는 순간 최근 일주일간 본인에게 행복했던 순간들과 불행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상대적으로 불행했던 것들이 잘 떠오를 것이며, 행복했던 것들은'무엇인가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해'라고 생각하지만, 불행했던 것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 조차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건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다 '뇌'가 생존을 위해 그냥 그렇게 세팅되어 있다.


 갑자기 뇌 이야기를 허 이유는 산후우울에 대해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다. 아이를 양육하며, 기쁜 일도 많고 행복한 일도 많다. 확언하건대, 힘든 일보다 행복한 일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울이 올까? 그냥 뇌가 그렇게 세팅되어 있다. 우리가 힘들고 불행한 것이 더 기억이 나게끔.


 내가 상담으로 내담자를 만나거나, 조언을 해야 할 자리가 생길 때 위의 '뇌'이야기를 꼭 해준다. 


'우리는 행복한 일과 불행한 일을 동시에 겪는데, 불행한 기억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고,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라 뇌가 자동으로 그렇게 세팅이 되어 있는 거라고, 하지만 그러면 너무 억울하지 않냐고! 그러니 기분 좋은 일들도 한 번씩 억지로라도 생각해 보자고, 그것만으로도 내 삶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그런데 이 이야기를 산모들에게 해주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자책을 갖게 해 불안과 우울만 가중시킬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초반의 육아는 그렇다. 좋은 이야기를 좋게들을 여유란 없다. 

 단, 나는 이 이야기를 산모의 주변인들에게 해주고 싶다. 힘들어하는 산모가 있다면, 그 산모에게 '무엇인가 방법을 제시(라 말하지만 솔직히 잔소리)'하기보다는 그냥  '산모가 잘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응원해 주길 바란다.

'아이는 너를 너무 좋아해' , '엄마가 너무 좋으니 울면서 찾는 거야',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지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걱정하지 마 사회에도 네 자리는 꼭 있어'  등등 온전한 응원 말이다. 그리고 그 주변인 중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은 배우자, 즉 부부 서로 간이다.

 나는 이것이 '산후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저 응원을 서로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꼭 만들었으면 한다. 내가 물리적 조건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돈(시간)이 전부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심리적 지원과 지지가 좋으면 무얼 하나, 분유와 기저귀 살 여유가 없다면 말장 도루묵이다. 그리고 이 물리적 조건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본인은 기준에 맞게 절대적으로 충족해야 함을 잊지 말자(남들 다 사는 '고급 디럭스 유모차', '독일제 분유' 나는 못 산다고 슬퍼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아 글을 쓰다 보니 이'절대적인 물리적 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것도 산후우울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음... 이 글이 산후우울에 대해 완벽하다고는 이야기 절대 못한다. 하지만 앞으로 자녀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아주 진지하게 고려해 본다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하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산후우울을 굉장히 현명하고 지혜롭게 맞이'하며 꾀나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08화 우리 부모님과 숲이의 첫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