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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거 Sep 05. 2024

숲이 인생 첫 외출

'이제 아파트 단지정도는 나가봐도 되지 않을까?' 지난주 와이프가 내게 이야기했다.


찰나의 시간 별의별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나간다.


'지금 기온이 괜찮은가?'  '미세먼지랑 초미세 먼지는?'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같이 타서 기침을 하면 어떡하지?'  '숲이가 너무 귀여워서 사람들이 자꾸 만지려 하면 어떡하지?' '동 사이에 바람이 꾀나 부는데 괜찮을까??' 등등등...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일상들일 수 있는데, 마치 숲이가 처음 집에 올 때 사소한 모든 게 걱정되던 것처럼 순간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그런 내 상황이 그대로 전해졌는지, 와이프가 내게 말한다.


'그냥 해본 소리야, 코로나도 재유행이고 한데 아직은 불안하니 나가지는 말자'


 그렇게 그 이야기는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었고, 그 주 토요일 이른 아침 쓰레기를 버리러 갔는데 고요한 단지 분위기에 날씨도 선선하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도 좋고, 숲이 컨디션도 좋은 것 같은데 '오늘 나가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서 지금의 상황을 와이프에게 이야기하고, 때마침 숲이가 입맛을 다시기에 분유까지 먹인 뒤 최상의 컨디션 숲이 와 함께 '첫 외출'을 시도했다(병원을 간 적은 있지만, 지하주차장 to 지하주차장을 이용했기에 건물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의 목표는 '단지놀이터 벤치 앞에 유모차를 세우고 우리 가족이 마주 보고 앉아서, 나와 아내가 찹쌀떡과 음료수를 먹고 들어오기'정도로 아주 소소했다. 

 일단 숲이가 적응도 하고, 앞서먹은 분유 트림도 할 겸 내가 안아서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무사히(?)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첫 바람을 맞고 나무향을 맡은 숲이는 신기했는지 꾀나 두리번두리번거리는 것 같았다. 놀이터까지 이동 중 햇살이 꾀나 강하게 비추는 것 같아 숲이 걱정에 조금 빠르게 이동을 했다. 목표지점에 도착한 순간 내 머릿속에 아파트 안내방송이 떠올랐다. '아파트 병충해 예방을 위해 단지 조경에 농약을 살포했으니 주의 바랍니다'  물론 시간이 꾀나 지났기에 문제가 없겠지만 괜한 찝찝한 기분에 우리는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의 아쉬움이 관리사무소까지 느껴졌는지 집으로 향하는 길 갑자기 단지 내 석가산 분수가 나왔고, 숲이는 그것을 신기하게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5분의 아파트단지 투어로 우리 가족의 첫 외출은 마무리되었다.


 집에 들어와서 와이프가 찍어준 나와 숲이의 영상과 사진을 봤다.  5분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숲이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맡는 나무와 숲향기에 고개를 돌리고,  뜨거운 햇살에 얼굴을 굉장히 찌푸린다. 때마침 단지 내 석가산물이 나오자 숲이는 물소리가 신기했는지 고개를 돌려 호기심 있게 쳐다본다. 이 5분이라는 시간이 숲이의 기억은 남지 않겠지만 '새로움을 경험했던 본능'은 남지 않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숲이 와 바깥외출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물론 아직 자라지 않은 숲이의 건강이 가장 큰 게 맞지만, 솔직히 외부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성향도 꾀나 컸다. 그리고 이 내 성향 때문에 육아휴직기간 동안 숲이가 너무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도 꾀나 했었다. 하지만 이 짧은 5분이란 시간 동안 굉장한 호기심(호기심이 아니라 어색함일 수 있겠지만)을 보인 숲이를 보니, 숲이의 예방접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는 외출을 자주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도 아닌 이 5분의 외출만으로도 이렇게 쓸 이야기가 많은데, 앞으로 숲이와 경험하는 많은 '처음'들에 대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을지 기대가 된다. 동시에 '아 내가 아빠가 되었구나'라는 감정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리고 기대와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와이프와 숲이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오늘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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