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129일, SIZE 전쟁
숲이는 목욕하는걸 참 좋아한다. 진짜 완전 신생아일 때 우리 부부가 너무 미숙해서 온도조절을 잘못했던 첫날 목욕을 빼고는 목욕을 하면서 운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어제 목욕을 하는 도중 숲이가 갑자기 큰 울음소리를 냈다. 잠깐의 비명과 눈물로 끝이 났지만 우리는 꾀나 놀랐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순간 눈이 마주쳤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기 부랄(고환)이 욕조에 눌린 거 아닐까?'
평소에 하던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미루어 왔던 새 욕조를 부랴부랴 알아보기 시작했다.
앞의 글들에서 많이 작성했지만 숲이는 상당히(많이) 크다. 지금 129일을 향하고 있는데, 키는 9개월 남아의 평균 정도의 키고, 몸무게는 14개월 남아의 평균 정도키다.
이 사이즈가 주는 문제는 단순하지만 크다. 애초에 아기를 낳아본 적도 길러본 적도 없었기에, 기초교본, 또는 웹상에 있는 기본에 입각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아이의 물품을 구입했다.
일단 기저귀에서 첫 문제가 터졌다. 단순히 개월수와 몸무게를 바탕으로 2단계를 사용하고 있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이 허벅지에 기저귀 자국이 너무 많이 나서 알아보니 '개월수나 몸무게에 상관없이 기저귀자국이 많이 나면 작은 거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3단계는 건너뛴 채로 4단계를 사용해야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을 말하자면 숲이는 오늘(129일 차)부터 기저귀 5단계를 사용하고 있다. 기저귀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상식(?)에서 벗어난 상황인지 아실 것이다.
비슷한 에피소드는 '옷'이 있겠다. 우선 아이 출산 전에 집에 오자마자 입혀야겠다고 생각했던 옷들 중 단 한 번도 입히지 못한 옷이 다수이다. 선물 받은 옷들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클 수 있음을 계산해서 실제 숲이 개월수보다 훨씬 큰 옷들을 주셨는데, 죄송하게도 하나도 입지 못하고 소중하게 모셔두고 있다. 그래도 집에서 먼 입는 옷들은 어떻게든 입혔는데, 이제 슬슬 외출을 해야 하니 외출복 구입에 고민이 많다. 특히, 키에 비해 몸무게가 더 나가는 편이고 상체우 팔이 특히 길기 때문에 상의는 사이즈 100을 사야 안전(?)하고 하의는 100을 사면 반바지가 긴바지가 되는 상황이다(슬프게도 허리는 맞는다). 사이즈 100이 어느 정도냐고? 보통 24개월부터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정말 슬픈 건!! 아무리 노력해도 기성복으로는 옷을 절대 이쁘게 입힐 수 없다는 거다.
기저귀나 옷 같은 경우는 돈과 멋(?)을 포기하면 그래도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글 서두에 쓴 욕조 같은 경우는 진짜 쉽지 않다. 숲이가 사이즈는 굉장히 크지만, 아직 허리힘이 없어 홀로 앉을 수가 없기에 '허리를 가눌 수 없는 아가들이 쓰는 물품'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물품들은 숲이에게 너무 작다.
아기띠, 카시트, 유모차 등등 웬만한 아기용품들이 모두 그렇다. 대부분 우리가 구입한 물품들이 최소 12개월까지 길게는 24개월까지도 사용할 수 있는 물품들이었는데, 숲이는 4개월이 막 지난 벌써부터 사용이 어려워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사용하지 못해서 돈이 아깝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잘 커주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체품' 즉 당장 숲이가 사용할 수 있는 물품들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검도관에 다니는 초등학교 3학년이 키가 190이 되었다고 해서 함부로 성인반으로 옮기라고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까?
다음 주 영유아 검진을 받는데 상위 99가 아니라 아예 100이 나오는 건 아닌지 약간의 두려움(과 기대감이 동시에)이 있다. 잘 크는 것은 너무 감사한 게 맞고 실제로 너무 감사하고 있다. 다만 감사함에 더해, 그저 숲이가 얼른 허리를 가눌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아무런 대체물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지금의 시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욕심(?)이 한 스푼 추가되었다고 봐주면 감사하겠다.
혹시 출산을 준비하고, 아이가 태어날 예정인 가정이 이 글을 본다면! 굳이 아이의 물품을 너무 미리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보다 우리 아이가 굉장히(지나치게) 잘 자랄 수도 있음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잘 자라줘서 이런 감사한 고민까지 하게 해 준 숲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이번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