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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시작 후 첫 자유, 그리고 첫 병원

상담하는 아빠는 육아휴직 중(246일) - 45.

by 차거

와이프가 조기수축으로 입원을 하고부터, 숲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246일째 잘 자라고 있는 1년여라는 시간 동안, 와이프가 내게 가장 많이 한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오빠 구워 먹는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이다.


조기수축 때는 짚 앞 편의점도 가지 못 했기에 외식은 생각도 못했으며 숲이가 태어난 후에도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외식은 불가능했다. 숲이가 백일즈음 되었을 때부터 가끔 한 번씩 숲이와 함께 외식을 하고는 했으나, 불판이 있는 고깃집은 안전상 절대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났고, 드디어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이번 설 명절에 부모님이 우리 집으로 올라오셨고, 숲이는 평소 저녁 7시쯤 잠이 든다.


'엄마 숲이 잠들면 조금 봐줄 수 있어요? 우리 고기 한 번만 먹고 올게요'


명절에 역귀성으로 집까지 와주신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우리 부부만 고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정말 불효이지만, 우리는 그만큼 간절했고 부모님은 정말 흔쾌히 다녀오라고 허락을 해주셨다.


숲이가 태어난 후로, 우리 부부만 외출을 한 적이 없었기에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외출을 했다.


고깃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때마침 눈이 내려 온 세상은 하얗게 아름다웠고 오랜만에 외출이라는 설렘, 숲이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 함께 산책하던 추억 등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뒤섞였다.


와이프와 둘이 마주 보고 고기를 굽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무려 7인분의 고기를 먹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발걸음은 경쾌했다. 우선 숲이가 별 탈 없이 잠을 잘 사줘서 너무 감사했고, 부모님이 숲이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감사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집에 왔으며, 집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정말 감사의 인사를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내일도... 저녁에 산책 한 바퀴만 돌고 와도 돼요?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나는 극심한 복통과 함께 잠에서 깨었다. 점심이 지날 때까지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오후 4시쯤에 열이 38도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장염임을 직감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숲이가 태어나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아이 돌보다가 내가 아프면 어쩌지?'였다. 그 일을 드디어(?) 겪게 된 것이다.

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받은 뒤 집에 왔다. 몸이 좋지 않아 7시부터 방에 누웠고, 그렇게 2박 3일간, 컨디션 회복을 하느라 숲이를 돌 볼 수 없었다. 정말 너무나도 다행히도 부모님이 함께 계셨기에 와이프, 숲이, 나 우리 셋 모두 금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명절, 숲이가 태어나고 처음 겪는 이벤트들이 두 가지나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모두 주변의 도움 없이 부부가 육아를 하는 경우에는 참 많이 생각하게 되는 이슈들인 것 같았다.


와이프는 이야기한다.

'물론 숲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 하지만 그 이전의 삶이 생각날 때도 있잖아? 아직 1년도 안되었는데 그때의 삶은 전생 같아'


자녀가 있는 삶은 참 다르다.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라는 말은 굳이 특별한 이슈가 아니라 그냥 '일상'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였음을 느끼는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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