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향해 한 발짝

by 플랫화잍


서로에게 가장 편한 거리를 찾아 그 거리를 사이에 두고 지내는 것이 난 좋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서로서로를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이.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 황보름, 뜻밖, p.20



토론을 진행하는 동안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럴 수도 있겠네요.”다. 참 뜨뜻미지근한 말이다. 사람이 책을 읽고 의견을 말하는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다니. 말이야 방구야 툴툴대다가도 저 말 한마디면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마법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럴 수도 있다”는 문장의 위력은 굉장하다.

관심 가는 대로 책을 선택하지 않는다. 토론할만한 키워드가 있는지, 혹은 필사하고 싶을 만큼 문장이 쫀쫀한지를 살핀다. 책을 읽는 건 나의 안목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주절주절 뇌까리듯 늘어놓는 문체는 질색. 덮어두고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라면 문장 사이 여백이 넓거나, 삽화가 들어간 책에도 영 별로다.

그래서 새로 나온 책 목록과 믿을만한 누군가의 큐레이션 콘셉트에 관심이 많다. 타인의 시선을 한 꺼풀 덮어쓰려는 시도. 누구나 남들에게서 훔치고 싶은 한구석은 있게 마련이니. 확실한 건 이런 노력을 기울이면서부터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을 더 공들여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기 경험치 안에서만 사고하고, 아는 만큼만 볼 줄 아는 존재다. 누군가는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이루지 못한 꿈이 안타깝고, 또 다른 이는 의무를 저버린 가장, 우정을 배신한 비열함에 분노한다. 자! 지금이 ‘그럴 수 있다’라는 마법 주문을 외울 시간이다. 자신의 시선 안에 작품을 넉넉히 품고 난 후, 비로소 독자는 주인공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나만의 ‘재미’와 ‘감동’으로부터 거리두기에 실패하는 이유는 수백 가지다. 그 핑계로 늘 같은 풍경, 엇비슷한 생각에서 신박함을 찾는 건 요행을 바라는 마음과 같다.

버거운 책의 바다를 건너왔으니 이제 마주 앉은 이의 마음의 바다를 건너볼 차례다. 그이와 의견이 달라 등을 돌리기보다 ‘다름’의 크기만큼 내 시야가 넓어짐에 감사할 줄 아는 것. 당신은 책에, 타인에게, 그리고 삶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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