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바깥은 여름』 수록 단편 <가리는 손>, 김애란, 문학동네, p.214
언젠가부터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이 늘 존재한다. 스쳐가는 풍경, 소소한 일상, 마주치는 각각의 얼굴을 어떻게 특별하게 글로 담을까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생긴 버릇 하나, 남들의 말과 행동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똑같은 우스개 소리에도 사람들의 반응 온도는 제각각이다. 뜨겁게 박장대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피식 웃으며 냉소 섞인 말을 툭 던져 실수했나 내뱉은 말을 복기할 때도 있다.
다소 품이 들지만, 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포함된다. 덤으로 사람의 마음을 쉬이 속단하지 않고, 격렬한 슬픔이나 분노에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이해심이 바다처럼 넓어졌다기보다 ‘이해’의 스펙트럼이 세밀하게 쪼개졌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인생에서 쌓은 경험이 그리 다양하지 않고 개인적인 체험의 총량이 충분치 않아서 만나는 사람, 읽는 책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참조’가 된다.
반복되는 삶 속, 매번 똑같다고 착각하는 일상은 모두 다른 시간의 총합이다. 같은 공간 속,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동시대의 사람들일지라도 우린 태생부터 달라서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다. 오늘도 다른 사람의 삶에 나의 이야기를 대입해 글을 쓴다. ‘주변에 대한 이해’에서 ‘자기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 나는 그 길에 있다. 쥐도 새도 모를 탈주를 집요하게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