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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Feb 16. 2023

5. 좋아하는 일을 오래 즐기려면.

상상하며 읽고 구체적으로 써봐.

우리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빈번히 갈등한다. 나이도 먹었고, 이런저런 경험도 쌓은 지금의 나여도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망설일 확률이 높다. 상상력은 현재 내 모습까지만 허락하기 때문이다. 십 대로 돌아가더라도 여전히 심각하게 고민하겠지. 부모의 맹목적 기대가 고민의 무게를 더할지도.


어떤 어른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하는 일을 해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쟁력이 생긴다고. 하지만 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성장은 정체될지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들어 계속 좋아하며 오래 일하는, 덕업일치는 어떨까. 어쩌면 덕업일치의 경지란 단위 노력당 최대의 성과를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덕업일치의 신화를 서술한 책과 걸출한 주인공은 온갖 화려한 프로필로 치장한 채 스마트폰 너머에 있을 뿐이다.


덕업일치의 신화 속 그들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또 일요일 오후 5시의 석양을 보며 우울감이 밀려온다면, 빨리 다른 대안을 찾으라”라고 말한다. “가급적 괴로운 일은 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누가 모를까. 누군가에게 일은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괴롭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해도, 일 자체의 의미에 집중한다면 그리 좋아하지 않아도 지금과 다른 미래를 꿈꿀 수도 있겠지. ’ 잘하는 일‘과 ’ 좋아하는 일‘ 사이 고민은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다.


월요일, 매일 글을 쓰는 서른 명의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일’로 나를 소개해보라는 글감을 냈다.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글, 나름의 고민과 갈등을 담은 글이라 피드백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 아이들은 영어를 잘한다고 적었다가 사실 게임도 좋아한다며 정색을 했다. ‘웃는 것’을 좋아한다던 한 아이는 학원을 오가는 바쁜 시간 중에 조금이라도 웃어보려고 유튜브를 본다고 썼다. 소설에 과몰입하기나 친구에게 공감해 주는 일에 대해 쓴 아이들도 있었다. 각자 좋아하는 일을 설명하는 아이들의 진지한 태도가 마음에 콕 박혔다.


어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듯 애쓰다가 머뭇거리고, 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내면서도 어색하다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아이들의 언어에는 깃털이 달려있다. 한없이 가볍게, 그리고 멀리 날 수 있게 추진력을 더해주는 깃털 말이다. 자신의 글을 지켜보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종종 희열을 느낀다. 이들의 글을 더 오래 읽고 쓰고 싶디.


지금도 카페에 접속한 청소년 작가들은 모니터 앞에서 글과 씨름한다. 이들은 글로 연결되어 있다. 아이들만의 쓰는 즐거움을 온전히 그들의 것으로 지켜주고 싶다. 글을 쓰는 행위는 각자의 언어 사이에 오솔길을 내어 상대에게 닿는 내밀한 일이다. 아이들과 글을 쓰며 함께 웃고, 울고 화내는 과정은 내게도 또 다른 배움이 된다. 은유가 말했던 ‘배움과 지혜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현장이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독해력학원, 논술학원, 국어학원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읽기와 쓰기만 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멀리 본다면 그 말은 사실이다. 허나 읽기와 쓰기가 공부의 도구이기만 할까? 당장은 비록 ‘잘하는 것’을 향해 내달릴 수밖에 없지만, 매일 읽고 쓰는 이 아이들만은 거기에서 조금 더 멀리 보았으면 한다. 상상하며 읽고, 구체적으로 꿈을 써낼 수 있게. 읽고 쓰기는 분명 이들을 ‘좋아하는 것’, 오래 즐길 수 있는 삶을 향하게 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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