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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Apr 23. 2023

4. 한문장으로 일상 메꾸기

단, 욕심이 재미를 방해하지 않게.

언제 어디서든 쓰겠다는 마음만으로 글 한편 뚝딱 생산할 수 있을까? 이야기라면 가능하다. 우리의 일상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야기로 마무리되곤 하니까. 완성되지 않은 채 띄엄띄엄 나열된 단어도 공간의 분위기와 맥락의 물결에 올라타면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문장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퍼뜩 떠오른 ‘한문장 도움닫기 모임‘의 시작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유독 꽂히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앞뒤 서사나 맥락을 고려하더라도 내 수준에 좀처럼 나오지 않을 법한 단어들의 조합에 감탄하며 문장이 가진 힘에 기댈 때가 있다. 다른 생각으로 파생되며 확장될 씨앗이기도 했다. 두서없이 쌓인 책더미 사이에서 그럴싸한 첫 문장을 만나면 수첩에 적어두었다. 읽는 이의 처지를 반영했거나 아름다운 묘사와 서술, 여러 해석을 허락하고, 통찰이 담긴 문장까지 다양했다. 반복해 읽다 보면 내가 그 문장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가족의 반찬을 마련할 때의 마음처럼 그렇게 문장을, 생각의 재료를 갈무리해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 앞뒤 맥락을 제거한 ‘한문장’을 던졌다. 재미가 없으면 포기하고, 재미있으면 20일 또 도전하라는 당부도 함께. 장담 못할 포부를 밝히는 가입인사나 그만하겠다 가차 없이 돌아설 작별인사 따위 생략해도 좋다고. 잘 해내려는 욕심이 재미를 방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느슨한 모임. 이런 방식이라면 나도 상대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을 쉽게 덜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쓰고 싶었지만 쉽사리 첫걸음을 딛기 어려운 사람들은 아마 시작하지 못할 이유를 수백 가지를 드느라 해야 하는 당연한 이유 하나를 놓치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를 두고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다며, 우유부단하다고 넘겨짚는 건 편리한 오만이다. 손쉽게 상대의 결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으니까. 잘해보려 애쓰는 마음은 미래의 후회를 앞당겨 걱정하게 만든다. 이런 이에게 한문장은 다른 방향으로 튀는 ‘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핑계 삼아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뜬금없게도 핑계가 이유로 바뀌어버린 이들. 답답했을 코로나 기간 돌파구가 필요했던 사람들이 이거라도 부여잡겠다는 심정으로 모였다. 그들이 한문장에 각자의 이야기와 다음 말을 얹는 과정을 1년간 지켜보았다. 보잘것없던 나를 믿어준 분들께 받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크지 않아도 도움이 될 무언가를 돌려줄 수 있었다. 모임 안에서 다른 모임이 파생되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또 다른 만남과 연결이 이루어졌다.


“돌아보니 마치 코로나 3년이 인생 중대 계획이라 여겨질 정도로 준비된 과정처럼 여겨졌어요.”


한 참여자의 소회다. 코로나 팬데믹 전과 후, 외출 뒤 일상으로 복귀하듯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작업은 한 줄 필사하고 거기에 내 이야기를 보태는 단순반복이지만, 이 여정을 누군가가 함께함을 느낄 때면 가슴이 벅차다. 그래서 이 일정에 무조건, 모두, 빠짐없이 동행해 달라는 욕심은 잠시 뒤로 미뤄두려 한다. 나는 이곳에서 내 이야기를 엮어낼 테니 당신들은 다른 곳을 거닐다 언제든 생각나면 다시 들르라는 무언의 요청일지도.


예전에는 목적한 일, 오직 하나의 완성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한자리에서 보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매번 전전긍긍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차피 나는 계획한 대로 척척 해내는 명랑소설 속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초조해한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으로만 하루 일상을 꽉 채워 넣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나은 습관으로 일상을 메꿀 수는 있었다. 그런 날은 왠지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난 오늘도 주위 사람에게 귀찮아도, 바빠도, 힘들어도, 뻘쭘해도, 어색해도, 싫어도 한 번쯤 툭, ’한문장‘을 던져보라 권한다. 멈추지 않고 해내다 보면 많은 일들이 괜찮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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