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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Jun 06. 2023

10. 지적겸손의 미덕이 필요한 순간.

빈 수레가 요란한 건

“흰 옷 참 좋아하더라? 너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


오래전 한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청자켓을 입고 간 날인데, 청자켓이 흰색인걸 처음 봤다나. 첫 대학은 집에서 편도 두 시간 거리. 매일같이 술 먹고 늦게 귀가해 아침에 일어나 눈곱 떼기도 바빴다. 손에 집히는 대로 옷과 신발을 걸치고 축축한 머리칼을 휘날리며 뛰기 일쑤였다. 어제 입은 옷은 흰색 쫄티, 그저께는 흰색 바지, 그끄저께는 흰색 재킷. 아래 바지 조합은 청바지 아니면 검은 바지였으니 일명 ‘컴싸’, 시험 마킹용 컴퓨터 싸인펜을 오마주한 익숙한 조합이었다. 정작 나는 어제 무슨 옷을 입었는지 까마득한데 옷차림에 대해 빅데이터를 제공하고 패턴을 분석해 준 선배는 후배의 차림새에 관심이 많았다. 여학생이 극소수였던 곳이라 그랬으려니, 그렇게 스무 살의 꾸밈새를 각성했다.


수십 년 후,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의 옷장이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터틀넥에 리바이스와 뉴발 그레이 운동화를 신었고, 저커버그의 옷장에는 똑같은 디자인의 회색 티셔츠와 후디가 열 맞춰 걸려있었다. 옷을 고르느라 사용될 에너지를 줄여서 더 생산적인 일에 사용하겠다는 의미다. 아인슈타인도 뭘 입는지 고민하는 건 ‘시간낭비’라 했지 아마. 인간은 한정된 인지적 자원으로 일일이 신경 쓰기가 불가능하므로 한계의 극복을 위해 습관, 관습, 버릇, 편견, 첫인상 등에 기대 별생각 없이 사고를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수잔 피스케와 셸리 테일러의 ’ 인지적 구두쇠‘란 개념은 마치 구두쇠가 돈 쓰기에 인색하듯 사람 역시 인지적 노력을 기울이기 꺼린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다.


머리 아프게 생각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한때 혈액형 성격론에 심취했고, ABO 식으로 인간을 갈라 살피는 행위는 인간의 다양성을 퉁쳐버린다는 요즘의 비판에 직면하여 이제는 보다 세분화된  16가지 MBTI 유형 특성을 즐겨 검색하는 내 경우만 봐도 지극히 그렇다. 그뿐인가. 사십 년 넘게 살며 만난 사람들의 인상과 행동패턴을 나만의 개똥 관상학에 버무려, 분석 분류하여 유익과 무익을 가른다. “내 직관은 틀림없다”는 대명제와 함께.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선택의 순간은 일생일대의 결정이라기보다 “오늘 뭐 먹지”, “어딜가지”, “뭐 살까” 같은 그럭저럭 심리적 품이 덜 드는 소소한 고민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관계를 살아내다 보면 굳이 따지지 않아도 패턴화*유형화된 단축키 하나로 간단히 해결가능하며, 모두에게 ’최고‘의 결과물보다 ’최선‘ 혹은 ’차선‘을 허락해 적당히 괜찮았다는 평을 끌어내는 게 골머리를 덜 썩히고 두루두루 좋은 일이 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 친숙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면 더더욱, 상대의 혐오성 발언을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혹은 넘어가주는 경우가 많다.


“보통 결혼한 아줌마들이 목소리가 커.”

“특정 지역에 사는 여자들이 기가 쎄지.”

“요즘 여자 아이들은 남자애들보다 되바라져서..”

“엄마가 저래야 하는 거잖아.”

“공부하는 학생이 저래도 돼?”

“애를 안 낳아봐서 짐작도 못할 거야. “

“굳이 선을 가르려는 건 아니지만~”


저 말들은 후크송의 후렴구처럼 반복재생되곤 한다. 내가 즐겨 쓰는 말도 포함되었다. 나 역시 인지적 편의에 기댄 사고를 하고 있음을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이끌고 진행하는 일을 하다 보니 몹쓸 관성도 작용하여, 지인의 언행에 왈가왈부 잘난 척 지적하는 오만을 감행할 때가 많다. 사실 어느 자리에서건 나는 썩 반가운 사람은 아니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술 한잔 하는 자리에서 ”지금 당신의 발언은 편견을 담고 있으니 그 대상을 특정 계층이나 연령대로 한정하지 말고 범구성원적으로 확대시켜라. “라고 그때그때 지적질을 한다면, 혹은 받는다면? 소주잔 세례까진 아니더라도 고까운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할 터다.


자신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재지 못하고 주변에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듯 말하는 이, 지적 호기심도 낮고, 눈에 띄는 성과가 없으면 배움을 헛되이 여기며, 일을 그르치고서 누구 때문이라 그 탓을 외부로 돌리는 이.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믿음과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게 아님을 인정하는 자세, ‘지적겸손’이라는 미덕이 필요하다.


책모임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하나의 책으로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 몰랐다고. 책모임은 내 생각이 꼭 옳지 않음을 확인하는 자리이자 자신의 부족함을 새로이 채우겠노라 다시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배움의 장이 꼭 ‘학교’나 ‘교실’ 일 필요는 없다. 개인의 역량이나 재능을 골고루 살피는 매운 눈매를 가진 리더, 자율성을 갖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성원, 서로 기민하게 협조하는 풍토 아래라면 어디서든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는 상호학습이 가능하다. 늘 만나던 사람, 나누던 이야기, 공유하던 생각을 경계하고 복기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형태가 꼭 책모임일 필요는 없다. 빈수레는 요란하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던가. 너무 익은 낟알 때문에 벼의 줄기가 꺾일 수 있음을, 어느 곳을 향할지 모르는 수레일수록 난리법석, 요란함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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