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책담 풍경수집기
‘평대’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책방에 책을 눕혀 진열하는 평평한 진열대를 의미한다. 오랫동안 책을 좋아했지만 어떤 식으로 책이 진열되는지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면서부터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던 몇 개월 사이, 내 책상 위에는 <앞으로의 책방 독본>이나 <무지개 그림책방>, <동네 책방 생존탐구> 같은 책이 하나둘 놓였다. 그때부터였다. 마음속 빈 평대 위에 하나둘 내 책을 진열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2002년, 월드컵으로 서울이 들썩일 때 종로 큰길 종로서적 1층에 폐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었다. 친구들과 단골 약속 장소였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지만, 얇았던 내 주머니 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려주던 공간이었다. 오랫동안 서가를 거닐다 보면 빽빽이 꽂힌 책등의 제목이 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그러다 일기도, 편지도 쓰지 않는 세상, 카톡이나 인스타에 간단히 몇 자 안부를 적고 마는 세상이 되었다. 사진과 이모티콘 몇 개로 세상과 만나다가도 문득 삶을 긴 호흡으로 풀어놓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 작년, 혜화동에서 소원책담을 만나며 내 추억 저편의 종로서적이 다시 소환되었다.
소원책담에는 다정함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 치이며 수십 번 혼자 선을 긋다가도 “세상이 얼마나 진보하든, 종이도 책도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에서 여유는 사라지지 않는다”(<아주 오래된 서점>, 가쿠타 미츠요, 오카자키 다케시)와 같은 문장을 만나면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묵묵히 한자리에서 소원책담을 지키는 재호샘에게서도 같은 마음을 읽었다. “이 동네에 사세요?” 소원책담에 들러본 이라면 재호샘에게 한 번쯤 받았을 법한 질문이다. 천천히 메뉴 주문을 받고, 자기만의 속도로 계산을 마무리하며 말을 건네는 그의 속내에는 첫 방문에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을까 배려하는 마음도 담겨있다.
입구에 놓인 책장에는 재호샘이 읽은 책이 꽂혀있다. 이따금 책 속 흔적을 통해 그가 책 읽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정신없이 인덱스가 붙은 책은 모임을 준비하느라 집중했을 모습을, 책장에 번진 물얼룩은 그가 책을 읽었을 날의 날씨를 짐작하게 했다. 특정 페이지의 갈피는 완독을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갈피에 끼워진 머리카락을 보며 그의 시력을 걱정하기도 했다. 어느새 내게도 그에게서 빌려온 책이 상당히 쌓였다. 되돌려줄 날을 따져보며, 집에 데려올 또 다른 책목록을 정리한다.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그렇게 소원책담을 들러간 사람들의 마음을 믿으며 재호샘은 오늘을, 내일의 책방을 준비하는 게 아닐까.
요즘은 더 자연스레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꼭 당장 가려던 게 아니었음에도 예정 없던 시간을 만나고 싶은 날,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날엔 창가자리, 목덜미에 쏟아지는 햇볕을 등지고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언젠가는 저 책으로 모임을 열어야지, 여유가 생기면 이 책을 집에 데려가야겠어, 친한 이에게 딱인데 한 권 선물할까. 책방 서가를 어슬렁거리며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만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한다.
가장 좋은 책방은 문을 여는 책방이다. 늘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닫는 책방, 꾸준히 지속하는 책방,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는 책방이다. 대형 유통망과 새벽 문 앞 배송, 다양한 콜라보로 무장한 굿즈와 마일리지와의 경쟁, 책이 팔리는 속도와 무관하게 쏟아지는 신간 도서. 겉으로 보기에 동네 책방은 고요하고 편안한 곳 같겠지만, 동시에 책방 지기의 소리 없는 아우성 가득한 고독의 공간이기도 하다. 1인 자영업자의 숙명일지도.
손님과 책방은 가느다란 실로 위태롭게 연결되었을지 모른다. 가느다란 연결이 끊어지지 않게 어느 한쪽이 끈덕지게 잡고 있으면, 손님과 책방이 서로를 향하는 날도 분명히 찾아오리라 본다. 새로운 세상과 꾸준한 마음이 만나는 곳, 오롯한 나만의 신간을 만나러 동네 책방 소원책담을 드나드는 풍경이 많아지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각자가 기억하는 책방 풍경을 모으며 지냈으면 한다. 그리하여 일상의 자리에서 나의 동네 책방을 떠올릴 때면 닫힌 곳이 아닌 언제나 활짝 열린 장면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