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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모음집#9

by 실버레인 SILVERRAIN



#눈맞춤


화장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는 작은 꼬마아이가 하나 서 있었는데, 몸짓이 너무 급한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앞에 서 있던 여성과 머리 모양이 비슷해서 보호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화장실’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아마도 어른들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눈치였다.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레 웃으며 손짓했다.

“저기 들어가도 돼~”

정말 급했던 모양이다. 허둥지둥, 호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문이 잠기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밖에서 문을 잡아주고 서 있었다. 얼마 후 일을 마친 아이는 나를 한번 스윽 바라보더니, 쑥스러움이 섞인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고 곧바로 뛰어 나갔다.


아직 혼자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기엔 너무 어려보였다.

보호자는 어디 가셨길래 저 어린 아가씨 혼자 화장실에 있었던 거죠…?






#없겠다.


친구와 나는 답 없는 주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저번 주, 나는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글을 쓰고 밤에 친구를 만났다.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품고 있었던 탓일까, 대화의 물꼬는 자연스레 그 주제로 트였다. 책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친구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다가 말했다.


“너는 다른 사람하고 말 잘 안통하겠다. 이런 생각 평소에 하는 사람, 주변에 별로 없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랑 이야기 하잖아”






#딸,고마워


엄마에게 3일 연속으로 안좋은 일이 일어났다. 엄마의 행동으로 일어난 일이긴하지만.



1. 공용 주차장인 줄 착각하고 이상한 곳에 차를 세워, 주말 내내 자동차 없이 살아야 했다. (월요일에 찾아야 한다)


2. 펜션 예약을 하다가 버튼을 잘못눌러 돈이 날라간 줄 알았다.(다행히 해결)


3. 오전에 수업이 있는 줄 알고 나갔는데 오늘이 쉬는 날이라 다시 돌아왔다. (이건 직원이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이런일들이 있었다고 말하며 나한테 아이스크림 먹으러가자고 하신다. 엄마 입에서 생전 ‘아이스크림 먹으러가자’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속이 많이 답답했나보다.

말을 듣자 마자, 그냥 같이 가줘야할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 먹고, 동네 돌다가 돌아왔다.


엘레베이터에서

”딸 고마워.“






#괜히..


손님 세 분이 오셨다. 모두 수화로 대화하셨다. 귀가 들리지 않으셨지만, 그들의 얼굴엔 활짝 웃음이 피어 있었고, 그들의 세계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우리에게는 손짓을 크게, 몸짓을 섞어 말씀하셨다.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괜히 마음 한켠이 이상해졌다.


그렇다.
찾아보면, 감사할 것이 참 많다.






#Possibility


“어떻게 다른 사람을 신경 안 쓸 수 있어?”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고 감정이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내 에너지를 쓰고 싶은 사람에게만 쓴다. 평상시 보고 듣고 읽는 것에도 그렇다.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과는 깊게 이어지지 않으려 한다.


만약 그 사람이 변화의 가능성을 보인다면, 진심을 담아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딱 할 도리만 다하고,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들 또한 각자의 신념에 따라 살아갈 것이기에,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너처럼 마음이 건강해야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었지만, 나의 태도가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이 질문을 했던 지인은, 정말로 자기 자신을 바꾸고 싶어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깊은 자기성찰과 꾸준한 노력이 있다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잉오잉


사실 가끔 여기에서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이 글 쓰는 행위가 의미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의미없이 시간 보내는 일 싫어한다.)


근데 이따금 ‘오잉오잉’ 의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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