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 송이에 기분 좋을 일인가

산티아고순례길. 카리온 - 테라딜로스 26.4km

by 실버레인 SILVERRAIN

오늘은 아침식사가 좀 푸짐하다.

바흐레이, 조지와 함께 걷기로 한 날이다.

그들이 빵을 먹어서 나도 싸가는 대신 아침에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오니 7:38분이다. 평소보다 늦게 나왔다.

혼자 걸을 땐 항상 깜깜한 새벽에 걷다가 동이 터서 나오니 뭔가 새로운 것 같기도 늦은 감도-

아침부터 누군가와 말한 게 정말 오랜만이다.

포르투갈에서 온 조지는 브라질에서 온 바흐레이와는 순례길에서 만났다고 했다. 둘은 포르투칼어로 소통한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을 때 공용 언어로 포르투칼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지금도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포르투갈 사용 국가이다.


조지는 중간에서 포르투칼어, 영어를 나와 바흐레이에게 통역해 주었다. 첫날 바흐레이랑은 구글번역 써가며 휴대폰 없이는 의사소통 불가였는데.. 조지 있으니 한결 편하다.

식수대가 나와 물 충전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바흐레이다. 어제 다시 만났을 때 너무 보고 싶었다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사실 엄마뻘이긴 한데.... 순례길에서는 다 친구!

오늘은 같이 아름다움을 공유할 사람이 있어 좋다.

포르투갈어로 아름답다는 '보니따 bonita'(여성명사)

- '보니또 bonito'도 있는데 이건 남성명사에 쓰인다.

여기서 바흐레이에게 그 말을 배웠다.

가는데 안개가 자욱한 길이 나왔다.

안개가 끝이 안 보인다. 안갯속을 계속 걸으니 머리가 축축해졌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다.

산티아고까지 400km 남았다는 비석이 나왔는데 벌써부터 시원섭섭하네

오늘은 걸어야 하는 총 길이가 26km 정도인데 17km를 직진으로 걸어가야 한다. 지금 걷는 이 길은 가장 고요하고, 한적하며, “무(無)의 길”로 불리는 대표적인 메세타 구간이다. 그늘도, 앉아서 휴식을 취할 장소도 거의 없어 마음의 단단히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 특히 나같이 화장실 자주 가는 사람은 더... 그래서 물을 최소한으로 마셨다.



산티아고 순례길 주요 5대 구간

나바라 구간

생장(Saint-Jean-Pied-de-Port)→ 팜플로나(Pamplona)

- 피레네 산맥을 넘는 힘든 시작, 아름다운 산 풍경


리오하/부르고스 구간

팜플로나(Pamplona) → 부르고스(Burgos)

- 포도밭, 작은 마을들, 문화유산 풍부


메세타 구간

부르고스(Burgos) → 레온(León)

- 끝없는 벌판, 한적한 풍경


갈리시아 입구 구간

레온(León) → 오세브레이오(O Cebreiro)

- 산지 풍경, 다시 울창한 숲


갈리시아 구간

오세브레이오(O Cebreiro) → 산티아고(Santiago)

- 짧은 마을 간 거리, 비 오는 날 많음, 숲과 안개, 마무리


안개길이 끝났다.

800M 남았다고 알려주는 표지판을 보며 'Vamos' 말하는 바흐레이

바모스는 포르투갈어이며 영어로는 Let's go인데 너무 많이 말해서 가장 빠르게 외운 표현이다.

17km의 끝이 보인다.

카페 도착

대왕빠에야 구경

카페콘레체 한 잔 시켰다.


café = 커피 / con = ~와 함께 / leche = 우유

“우유가 든 커피”

즉. 카페라테

어제 빵집에서 산 초코 빵을 먹었다.

당 떨어져서 아무 생각이 없다.

조지하고 바흐레이 나누어줬는데 맛있다고 해서 뿌듯

온타나스에서 커뮤니티 디너 때 만난 스위스 할머니

독일어가 슬며시 기억나 몇 마디 나누었는데 서로 알아보고 인사했다.

오늘이 할머니 생신이어서 생신 축하드렸다.

Herzlichen Glückwunsch zum Geburtstag!

덤으로 기습 뽀뽀를 받음...ㅎㅎㅎㅎ

꽤 오래 앉아있었다. 다시 가자

해바라기 밭.. 근데 어째 이전보다 더 삐쩍 마른 것 같다.

갑자기 조지가 해바라기를 가져온다.

큰 건 바흐레이, 작은 건 날 주었다.

나한테 작은 거 줘서 미안하다고 말하며..ㅎㅎ

꽃 한 송이에 이렇게 좋을 일인가

그래도 꽃 받아서 기분 좋아졌다.

가방에 꽂고 다녔다.

노래를 틀며 갔는데 갑자기 흥이나 삼바 추는 바흐레이~

역시 브라질이 열정의 나라라서 그런가 다르다. 몸에 흥이 배어있다. 나도 옆에서 삼바를 배웠다...ㅋㅋㅋ

누군가 만들어 놓은 하트 사진 찍기

쭉쭉쭉 걷는다

저 맨 꼭대기가 교회다.

조지가 교회에 가고 싶다고 해서 들렀는데 문이 잠겼다.

그래서 그냥 앉아서 쉬는 중

벽화가 너무 예뻤다.

하늘도 맑고

이마가 빛나도록 내리쬐는 햇볕에 선글라스를 안 쓸 수 없었다.

나무들도 햇빛을 뜨거워하는 것 같다.

오늘도 고양이 발견

혼자 어딜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지

인기척을 내니 내 앞에 와서 '냐옹, 냐옹' 거린다.

배고픈가.. 먹을 게 없어서 미안해

흩뿌리듯 피어난 들꽃 보며 누가 심은 것 같지는 않고 꽃씨가 날아다니다 이곳에 뿌려진 것 같다.

이 풍경을 보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흐레이와 조지는 마을 초입 알베르게에 묵어 헤어지고 나는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간다.

편의시설 없이 알베르게만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알베르게 들어가기 바로 전 샛노란 자동차가 내 눈길을 확 끌었다. 미니쿠퍼.. 처음에 자동차 살 때 너무 귀여워서 내 드림카였다. 주변에 남자분들이 효율 안 좋다고 혼다를 추천했던 기억이 난다.(그 말이 맞았다)

그래도 언젠간 몰아보고 싶다.

알베르게 도착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볕이 좋아 앉아서 쉬기도 하고

나도 씻고 2층으로 올라왔다.

배고파서 복숭아 먹기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시원한 바람이다.

알베르게 식당인데 너무 아기자기하다.

부모님 - 딸 2세대가 같이 알베르게를 운영 중이었다.


내가 인테리어 너무 예쁘다고 했더니

'Gracias' 환하게 웃으며 답변해 준 딸주인장

오늘은 저녁 스킵

대신 토르티야랑 (또)오렌지주스를 먹었다.

방명록도 남기고!


급 피곤해져서 낮잠을 잤다.

그거 아세요..? 자는데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

일어나니 또 배가 고프다.

2층에 올라와 챙겨 온 간식들을 무게도 줄일 겸 먹었다.

토마토 입에 한가득 넣다 물 튀어나오고..

요플레도 먹고

남은 빵도 먹었다.


음.... 이럴 거면 그냥 저녁을 먹을 걸 그랬나?

그래도 내일 가방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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