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산티아고순례길. 만실라 - 레온 18.7km

by 실버레인 SILVERRAIN


오늘은 레온으로 간다.

아침식사는 카페콘레체와 어제 장본 것들로 먹었다.

오늘도 같이 동행하는 바흐레이와 조지

나왔는데 밖이 캄캄하다.

비바람이 불어 모자에 비닐우비까지 썼다.

어제 바람은 약과다.

오늘은 정말 어마무시하다.. 나무뿌리가 흔들리는 바람이다.

사정없이 내리는 비에 걷는 동안 신발과 양말, 비닐우비를 뚫고 바람막이까지 다 젖었다.

조지는 발이 아파 뒤쳐졌고 나랑 바흐레이는 쉼터에 왔다.

머리가 점점 추노 되어가는 중...

강물의 흐름도 거세진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 와서 더 길게 느껴지는 순례길이다.


터널이 나와 비가 좀 약해질까 기다려 보았지만 그럴 기미는 전혀 없어 보였다. 오늘은 그냥 비 맞기로 하고 걸었다.

몇 시간 만에 조지를 만났다. 절뚝절뚝 걸어서 많이 걱정했는데.. 우릴 보더니 안아주었다.

어느새 비는 멈추었고, 하늘에 하늘색 틈조차 내주지 않던 먹구름이 일렬로 정렬 맞춰 서서히 걷히며 맑음의 막이 오른다.


정말 장관이다. 마치 영화관에서 어두운 장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다가, 화면이 환하게 전환되는 그 순간처럼.


그런데 좀 느린 화면.

배속으로 돌렸으면 좋겠다.

맑아지는 날씨에 한시름 놓았다.

이미 다 젖긴 했다.

이 구름의 흐름과 형태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너무 아름다웠다.

앞쪽 구름도 뭔가 올림포스 신전에 나올 법한 평범하지 않은 구름이다.

레온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에 건물들의 간격이 촘촘하다.

도시에 도달하니 이전의 작은 마을과 달리 지나가는 차도 보인다.

레온에 들어왔다.

지나가는데 처음 보는 열매를 발견했다.

너무 특이해서 조지에게 이거 아냐고 물어봤는데 솔방울이란다.

날씨가 이렇게 변할 수 있나-

먹구름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해가 난다.

이 건물 보니 왠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포스터가 생각났다.

비슷하지 않아요..?


알베르게 도착

나는 레온 초입구의 알베르게이고 저들의 숙소는 레온 시내로 20분쯤 떨어져 있다.

씻고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곳은 알베르게 + 호스텔

일반 여행객들도 묵고 있다.

한 순례자가 태극기 위에 편지를 써놓고 갔다.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어느새 꽉꽉 채운 도장

너무 배고파서 샐러드, 남은 빵 먹는 중

세상에.. 손등만 내놓고 다녀서 손등만 많이 탔다...

스페인의 햇빛이 그만큼 강렬하다.

씻고 나왔다.


도시,

맞네 맞아

눈이 부실 정도로 맑아졌다.

아까 비 온 거 맞지..?

유난히 많이 보이는 빨간 자동차

'스페인 사람들 빨간색을 참 좋아하네..'

이제 막 도착한 순례자들도 보이고 레온 현지 사람들도 보인다.

주택가를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간다.

성벽



로마와 레온


레온(León)과 로마(Rome)의 연결은 단순한 영향 관계를 넘어서, 도시의 뿌리 자체가 ‘로마’에 있다. 레온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군사적 요충지로 출발한 도시이다.


- 도시 이름의 어원

로마 제국 제7군단(레기온 VII 게미나 Legio VII Gemina)

서기 74년에 지금의 레온 지역에 주둔하면서 형성한 군사 주둔지도시 이름이 레기오(Legio) → 레온(León)으로 변화했다.


- 로마군단도시

로마는 이베리아반도(지금의 스페인)를 정복하며 주요 지역에 군단을 주둔시켰는데, 레온은 그중에서도 북부방어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군인들과 그 가족, 상인, 민간인들이 정착하며 점차 도시로 발전했다.


- 로마성벽

지금도 레온 도심에서는 로마 시대의 성벽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다.


- 로마식 도시 구조

도심 곳곳에 로마식 포룸(광장)과 도로 설계의 흔적이 남아있다. 레온의 구시가지 골목이 복잡하게 얽힌 이유도 로마-중세 도시 구조의 연속의 영향이다.


- 로마정신

스페인 최초의 의회 중 하나가 이곳 레온에서 열렸으며 그 과정에서 시민권, 법치주의, 자치권 같은 개념이 발전했다.


레온은 로마의 유산에서 태어난 도시로, 군사, 건축, 행정, 문화 등 다방면에서 로마의 영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성벽을 지나 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걷다 보면 이런 장식 아이템 가게가 심심찮게 보인다.

‘누가 살까?’ 생각이 들긴 한다.

밖으로 드러난 전선들을 보면, 이 집이 얼마나 오래된 건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도심 곳곳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물들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는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정성스럽게 유지·보수된 건물도 있고, 반대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낡고 퇴색된 건물도 눈에 띈다.

역사를 걷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여기도 공사 중

심심할 틈이 없다.

길이 좁은데 건물이 높은 편이어서 구경하느라 고개를 치켜뜨고 걸었다.




카사 보티네스 - Casa Botines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물이다. 대부분 가우디 건축물은 바르셀로나에 있지만 소수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여기가 그중 한 곳이다. 순례길 '아스트로가' 마을에서도 가우디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카사 보티네스는 레온의 상업 건물로 의뢰받아 설계된 것이며 당시 직물상 보틴 형제가 의뢰했기 때문에 ‘보티네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페인에서 casa라는 단어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집, 건물, 가문 등 을 뜻한다.


이 건물은 중세 고딕 건축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비대칭 요소, 장식적 창문득 가우디 특유의 곡선미가 조화를 이룬다. 마치 성처럼 생긴 이 건물을 당대에는 굉장히 혁신적인 설계였다.


현재는 가우디 박물관으로 운영되며 가우디 관련 전시관과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시간이 없어서 들어가 보진 않았는데 좀 아쉽다. 후에 아스트로가와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건축을 보며 ‘이곳에서도 보았으면 좋았을 걸..’ 생각했다.


이 장면, 이 순간이 너무 예뻐서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건축물, 맑은 날씨, 그 속에서 이동하는 사람들

잠시 동안 길거리에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식당에 도착했다.

건물 자체는 오래되었지만 이 내부는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고급스럽고 아늑하다. 감각적인 조명과 우드 텍스처가 어우러진 세련된 다이닝 공간이고, 그린 포인트 식물들이 싱그러운 온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서울에 있는 한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과거와 현대가 이질감없이 잘 어우러진 공간이다.

오늘은 아쉽게도 순례길에서 바흐레이, 조지와 마지막 날이다. 나는 내일 레온에 하루 더 머물 예정이고 이들은 떠난다. 오늘 비도 쫄딱 맞아서 힘들었겠다, 마지막 날이기도 하겠다 겸사겸사 맛있는 밥을 먹기로 했다.

이들은 벌써 와인 한 병을 하고 있네..

이제까지 먹어 본 올리브 중 제일 맛있다. 오늘은 와인 한 잔만 하기로 합의 보았다.

바흐레이는 손가락 키스를 날리는 중

오른쪽은 문어 크로켓

튀김의 식감이 그리 바삭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왼쪽은 아티초크 튀김

아티초크(Artichoke)는 한국인들에게 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유럽과 지중해권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식재료다. 고소하면서 단맛도 가지고 있다. 미네랄과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미국에서 유리병에 들어있는 절인 아티초크는 먹어봤는데 이렇게 요리로는 된 건 처음 먹어보았다. 바삭하고 고소해서 계속 손이 가는 맛이다.

고기는 그냥 맛있다....

별다른 소스 없이 위에 뿌려진 굵은소금에만 먹어도 좋았다.

위에 고추를 같이 구워주었는데 맵지도 않고 고기와 너무 잘 어울렸고, 옆에 감자튀김도 생감자를 튀겨 신선했다.

맛있게 먹었다.

근데 여기 디저트가 너무 환상적이다. 이곳에서 다 만든다고 한다.

디저트 때문이라도 다시 한번 가고 싶다.

마지막 에스프레소까지

식사 끝!


우리는 레온을 구석구석 둘러보기로 하며 첫 번째로 레온 대성당을 방문했다.

입장료는 7유로



레온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고딕 성당처럼 높고 넓은 창을 통해 자연광이 쏟아지게 설계되었으며, 그 창을 채우고 있는 것이 스테인드글라스이다.


창문들은 대부분 성서 이야기, 성인전, 중세 일상, 자연물 등을 묘사하고 있으며 글을 모르는 중세 대중에게 '빛으로 만든 성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붉은색, 파란색, 금색, 녹색 등의 비비드한 색감이 부드럽게 어우러져 있고, 햇빛의 각도에 따라 성당 내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스페인의 샤르트르라고 불리며 고딕 양식 스테인드글라스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아름다웠던 레온 대성당

근데 개인적으로 부르고스 대성당이 여운이 깊게 남았는지 그곳보단 감동이 덜했다.

같이 동행해 줘서 고마워요!

그동안 못 본 차들이 다 여기 있나



산 마르코스 수도원 (Parador de San Marcos)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한 건물이고 현재는 호텔&박물관이다. 과거엔 수도원 → 순례자 숙소 → 병원 → 감옥 등 다양한 공간이었다.


수도원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순례자인걸 알아보고 눈인사를 건넨다. '부엔까미노'라고 인사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예뻐서 찍어보기

왠지 모르게 초콜릿이 생각난다.

해가 넘어가니 길거리에 점점 더 많아지는 사람들

북적북적-

어제 만난 브라질 부부가 합류해 간단한 타파스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사실 이때 눈이 풀리고 좀 피곤했다..ㅎㅎ

가는 길에 내 눈을 사로잡은 바리케이드

몬드리안에서 착안한 것 같다.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도시 자체를 생동감 넘치게 만들어 주고 구석구석 매력 있게 한다.

타파스바 몇 곳을 들렀는데 밤이 되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겨우 자리가 있는 곳을 찾았다.


스페인의 밤 문화


스페인은 특히 여름엔 낮 기온이 35도 넘는 곳이 많다. 그래서 낮엔 쉬고, 해가 진 저녁부터 외출과 식사, 사회활동을 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점심은 오후 2~3시 저녁은 9~10시, 저녁 식사 후에도 밤 11시~ 새벽까지 바, 카페, 거리가 북적북적하다.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을 여러 바를 돌며 조금씩 먹고 마시는 문화를 즐기는데 이런 문화가 도시 골목과 광장을 활기차게 만든다.


가족 단위 외출도 많아서 아이들도 밤 10시쯤까지 바깥에서 노는 풍경이 자연스럽다.


그동안 내가 마을에 낮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보지 못한 이유인가 보다.


바흐레이와 조지랑 아쉬움 가득 담긴 인사를 했다. 다음에 꼭 다시 만나길 기약하고 '부엔까미노'를 말하며 헤어졌다.


만남의 즐거움

같이 보낸 시간의 소중함

헤어짐의 아쉬움



오늘은

비도 맞고

본 것도 많고

생각한 것도 많고

이리저리 돌아다녀 너무 피곤하다.


가서 빨리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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