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레온 연박
오늘은 레온에서 연박한다.
아침에 늦장을 부렸다. 어제도 위층 코 고는 소리에 잠은 잘 못 잤다. 어제 너무 피곤했는지 몸이 침대에 붙어있는 느낌이다.
츄로스를 사러 왔다. 이 집은 새벽 6:30부터 점심까지밖에 열지 않아 아침에 방문해야 한다. 숙소에서 한 15분 즈음 떨어져 있었다.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집이었다.
가게 앞 모여있는 스페인 아저씨들이 여긴 찐로컬이라고 말해준다. 아주머니는 내가 한국인인걸 알았는지 '안녕하세요, 설탕?' 이렇게 한 마디 하셨다. 너무 웃겨서 웃으며 '네'라고 대답했다. 이곳에도 한국인 순례자들이 많이 들르나 보다.
네 개에 1유로. 물가를 고려하면 꽤 저렴한 편이다.
갓 튀겨내어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츄로스는 나에게 인내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길에서 하나 먹었다는 이야기)
오늘도 맑-음
이 크록스는 내가 독일에서 2018년에 구입했다.
물건 사면 진득하게 사용하는 타입이라 이 아이는 독일, 한국, 미국, 순례길까지 따라왔다. 크록스 위에 파츠는 한국에서 구입했는데 웃고 있는 데이지이다. 걷다가 아래를 보면 저 파츠 때문에 미소 짓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나는 웃음을 연습했다. 억지로라도 웃기 위해 처절하게 연습했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바보처럼 웃는 건 아니다. 생각이 많아지면 저절로 무표정이 되고, 그 시절 나는 비관적이었기에, 내가 어두운 기운을 뿜어낼 때 어떤 모습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바꾸고 싶었다, 극복하고 싶었다. 웃음이 나지 않아도 의식적으로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연습을 했다. 일부러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게 습관이 되자, 어느 순간 진짜 웃음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감정은 잠깐 스쳐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감정도 습관이고, 결국 쌓인다. 그리고 쌓인 건 반드시 어느 순간 표출된다.
나는 웃음을 잃어가는 나 자신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웃어보세요.
그냥 입꼬리만 올려도 괜찮습니다 :)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말을 믿든 안 믿든, 웃음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힘이 있다. 설령 너털웃음일지라도.
진지하지만 유머 있는 사람이 좋다. 유머 있는 곳엔 웃음이 따라온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서로 웃을 수 있는 관계가 더 오래 이어진다. 그런 만남이야말로 계속 보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암튼 크록스 이야기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런 내 시간을 다 알고 있는 신발이라, 두꺼웠던 크록스의 밑창이 얇아져가는데도 버리지 못하겠다.
나는 이야기 있고 가치 있는 물건을 좋아한다.
조금 비싸더라도 품질이 좋고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선택한다. 쉽게 사지 않지만, 한 번 살 땐 제대로 고른다. 오래 함께하고 있는 내 물건들을 보면 물건을 고르는 안목은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아쉽게도 한쪽 얼굴은 떨어졌다...
OMG
오늘은 혼자 시내를 돌아다닐 예정
한 화면에 빨간 차 두 대가 잡히는 건 스페인에서 이제 흔한 일이다.
동네 과일가게
골목들 -
여기는 타파스집인데 스페인 할아버지들이 많이 보인다.
베레모가 참 잘 어울리신다.
이곳저곳 누볐다
어제 본 카사 보티네스도 다시 왔다.
천막 상점들이 열렸다.
자연스레 내 발걸음은 이동 중
기하학무늬의 액세서리들이 많이 보이는 스페인.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할머니들이 알록달록 개성 있게 옷을 입고 액세서리도 예쁘게 하고 다니시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름다움을 가꾸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직접 만든 도자기도 보이고
이 작가님의 작품은 사고 싶었다.
특히 전등
하지만 순례길 걷는 이슈로 구입은 포기했다...
다시 이동
이곳은 직접 감자칩을 튀겨 파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한동안 바이럴 타다가 잠잠해질 그런 느낌이다.
이 전날 만났던 한국인 순례자가 레온에 있다고 연락이 와서 만났다.
여기서도 츄로스를 시켰다.
손님이 많은데 직원이 혼자 일하고 있다. 주문받기, 계산, 츄 로스 튀기기, 음료제조, 초콜릿선물포장까지 모든 걸 다한다.
손님들은 기다리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직원을 보며 우리는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기다렸다.
속으로 ‘사장님, 서버 한 명은 더 고용해도 될 것 같아요..’
이러다 저 일 잘하는 직원까지 나갈 것 같다.
(오늘 당을 쏟아부을 작정은 아니었다..)
네 가지 초콜릿에 찍어먹는 츄로스가 시그니처
아아를 시켰는데 뜨거운 커피에 얼음컵을 따로 준다. 저번에 카페라테도 그랬는데. 스페인 문화가 아이스커피를 마시지 않나?
나는 입장 바꿔 생각해봐를 잘하는 편이다.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진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외국 사람들도 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나에겐 어렵지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나를 신뢰하며 말을 꺼내주어 감사하다. 조금 힘든 이야기라도 다 수용이 된다.
그런데 그래서, 가끔은 그게 버거울 때도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상대의 감정이 너무 생생하게 전해져서, 그 상황이나 생각이 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나의 성향은 분명 나의 달란트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에 닿고, 공감하며 함께할 수 있는 능력은 소중하다.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도 한다.
내가 없어지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기념품 샵에 들러 구경만 했다.
어제 왔던 레온성당도 다시 한번 지나고
그냥 카메라를 아래에 두고 찍어 본 하늘
중간에 꽃집이 나왔는데 화분이 옹기종기 너무 예쁘다.
혼자 거리에서 피식거리고 웃으며 돌아다녔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작은 것에 예쁨을 누리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축복이라는 걸 깨닫고 난 후 나에게 사람들은 ‘아웃오브안중’이다. 가끔 친한 친구들은 신기하다고, 또라이같다고 말한다..ㅎㅎ(사실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구시가지를 나와 알베르게 근처 마트에 갔다.
한국라면도 보인다.
돼지다리가 몇 개야..
장을 보고 돌아와서 저녁으로 가볍게 샐러드를 먹었다.
아까 간식을 너무 많이 먹었다.
나가기 전 브러시들을 씻어서 뒤쪽 베란다 볕에 말리고 갔는데 돌아와서 보니 누가 훔쳐갔다. 아침에 내 옆 침대에 있던 아주머니가 입던 속옷도 훔쳐갔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남이 쓰던 걸 쓰고 싶나..‘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 뭐 세상엔이해 못 할 일들이 많다. 그거에 비하면 이건 개미똥구멍보다 더 작은 일이겠지..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이리저리 물어봤는데 아무도 못 본 것 같다. '이미 벌어진 일 탓하면 뭐 하겠어, 다음부터 간수 잘해야지!' 생각하며 필요한 물건을 사러 다시 마트에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