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오늘은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넘어가는 날. 새벽 이슬비에 거리가 축축하다. 밤새도록 술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이들이 거리에 앉아있다.
내가 스페인어는 못 알아들어도 술 취했는지는 알겠다..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라 바쁜 새벽길이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 덕분에 불빛으로 가득했고 '대도시긴 대도시네'
가로등이 길을 비추지만 나 홀로 새벽골목길은 좀 쎄-하다.
여긴 또 만취한 사람이 무단횡단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살짝 놀라서 가장 안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내가 지나갈 때 클럽 폐장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여기도 혀 꼬인 소리가 들린다.
빨리 지나가야겠다.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마드리드의 새벽아침
맘 졸이며 무사히 역 도착
무사히 기차에 탑승했다.
3시간쯤 지났을까 아침이 되어 도착한 바르셀로나
마드리드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둘 다 스페인의 대도시이지만 마드리드는 좀 더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분위기. 바르셀로나는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예술이 한 껏 녹아든 도시다.
마드리드는 묵직한 반면 바르셀로나가 좀 더 세심하다고나 할까
바르셀로나 곳곳에서 특이하다 생각되는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가우디의 건축에서 영감 받은 건축이거나 가우디의 건축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기적인 형태, 곡선, 비정형적인 구조, 자연에서 영감 받은 디자인이 가우디 건축의 주요 특징이다. 처음 딱 봤을 때 '어! 독특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 아침을 여유롭게 만끽하는 사람들. 나는 관찰자가 되어 이곳 사람들의 표정을 보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여유 있고 쾌활한 느낌을 받았다.
배고파서 빵 사러 왔어요~ 고소한 냄새가 유리를 뚫고 내 코를 자극했다.
"샌드위치 하나 주세요"
날이 청명하니 걷기 좋았다.
주말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거리에 없어서 좋네
가우디의 까사 바요트 예약 시간까진 좀 남아서 카페에서 쉬다 가려고 한다. 맛있는 커피집은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그냥 길 가다가 문 연 카페로 들어왔다.
아니... 저기.... 시나몬 가루를 뿌려달라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바라진 않았어요..
휘휘 잘 저어 봅니다...
샌드위치는 맛있었고 포장지는 인상 깊었다.
단순한 드로잉인데 포장지에서도 구수한 빵냄새가 나는 것 같다. '뭐 여긴 포장지도 예쁘냐' 이렇게 바르셀로나에 나의 색안경이 작동되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라면보고 반가워서 한 컷.
까사 바트요 예약 시간이 다 되어 이쪽으로 슬슬 걸어왔다.
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직역하면 '바트요씨의 집'
요셉 바트요라는 부유한 사업가가 가우디에게 이 건물의 리모델링을 의뢰했고 원래 있던 건물을 가우디가 1904~1906년에 전면 개조하면서 지금의 예술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건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내부 계단, 창문, 천장 등 모든 요소가 직선 없이 유기적인 곡선으로 되어 있다.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설명이 나오는 오디오 가이드로 관람 중
모든 게 곡선인 이곳에서 가우디의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게 정녕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라고..? 그리고 구현해 냈다고..?’
햇빛이 그 역할을 충분히 다 해줘서 스테인드글라스는 내가 있는 이 공간을 더 몽실몽실하게 만들어주었다.
창문 너머 관람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마 365일 문전성시일 듯하다.
바닷속을 연상케 하는 집의 중앙. 마치 아이들 놀이터 같기도 하고 놀이공원 느낌도 난다.
‘바트요씨는 좋았겠어요... 이런 집에 살아서’
이곳에 들어가면 고개 돌리느라 바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든 곳을 봐야 한다.
이 그릇들은 사고 싶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떼 온 듯한... 너무 예뻐서 내 시선을 강탈했다.
가우디는 까사 바트요를 카탈루냐 전설 ‘산조르디와 용’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는데 지붕은 비늘처럼 생긴 타일로 덮어 용의 등을 형상화했다.
집이 아니라 테마파크 느낌이다.
해골을 연상시키는 발코니
바다 저 깊은 곳에 왠지 정말 이런 집이 있을 것 같다. 건축물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나는 이 건물에 들어온 후 한 방 먹었다.
건축의 아름다움이 이렇게까지 감각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니,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가우디의 세계에 완전히 잠겨 버렸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집은 잘 보존되어 있었고,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여운을 안고, 나는 천천히 그곳을 나왔다.
산책 겸 카탈루냐 광장에 가려고 했는데 저-어기 비둘기 떼가 보인다. 몇십, 아니 백 마리 넘는 거 같은데...? 근처에 날아다니는 비둘기가 많아 내 몸은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나는 조류공포증이 있어 못 간다......
go back.....
다른 길에 들어 액세서리 상점들 구경 중
작가들이 직접 만든 제품이다. 어느 하나 같지 않고 제각각 개성 있다.
희귀하고 예쁜 것들 잔뜩 구경 후 바르셀로나가 왜 예술의 도시인지 또 한 번 느낀 시간
한쪽에서 버스킹이 한창이다. 선선하니 날 좋은 날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는 오고 가는 이들에게 거리의 선물이 되었고 거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동영상은 왜 업로드가 안 되는 것인가..)
한가로운 주말 오후 바르셀로나의 길거리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눈도장만-
골목골목 편집샵들도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자마자 홀린 듯 들어간 크리스마스 마켓
왠지 낯익다 했더니 독일에서 갔던 크리스마스 마켓의 체인점이었다.
Käthe Wohlfahrt (케테 볼파르트)
독일 로텐부르크라는 도시에 이 상점이 있는데 가본 적이 있다. 너무 예쁘고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데 여기도 있다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언제 와도 이곳은 크리스마스. 남녀노소 너나 할 것 없이 구경 중이다.
또 금방 오겠지 크리스마스....
가다가 츄로스 집에 들어왔는데 직원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알아 반가웠다.
할아버지 핑크카디건이 참 잘 어울리신다.
유니크한 보라색 리무진도 봤다. 흰색 리본을 보니 웨딩카인가 보다. 뉘신지 모르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바닥을 보다가 이 문양이 계속 보여 궁금해서 상점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상징적인 시멘트 타일이라고 한다.
눈이 길거리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거리의 푸른 가로수 나무들은 도시를 더 따뜻하고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계속 걸어도 지치지 않는 바르셀로나
여기는 잠시 후에 방문할 '까사 밀라(Casa Milà)'
멀리서 봐도 가우디의 예술적 혼이 깊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나무 같고, 꽃 같고, 하늘 같고, 바다 같기도 하다. 자연을 품은 이 건축물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감탄을 터뜨렸다.
까사 밀라에 가기 전 저녁 먹을거리를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 과일들이 너무 탐스럽다.
후무스를 비롯해 식량구입 완료
계란도 반숙으로 익히고 아보카도, 토마토, 하몽, 치즈, 후무스. 하루 종일 걸으며 돌아다녀 배가 고파서 샐러드 한 상 거하게 차려먹었다.
까사 밀라 Casa Milà
마찬가지로 '밀라씨의 집'이라는 뜻이며 내부는 가정집 형태로 꾸며져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오래된 것에서 오는 우아함과 고풍스러움에 홀딱 반해버린 시간이다. 'antique'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집이랄까
옥상이 하이라이트인데 마치 전사들의 헬멧을 닮은 조형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한 기능적 요소조차 예술적으로 해석한 가우디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바닥 자체도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곡선으로 되어있다.
해가지고 등이 켜진 옥상은 그 진가를 더 발휘했고 그 순간 나는 그곳에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가우디의 세계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가우디 건축으로부터 충격받은 뜨거운 마음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식혀야겠다는 이상한 논리로 마무리하는 오늘...
“Originality consists of returning to the origin.”
원조(창조성)란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Nothing is art if it does not come from nature.”
자연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To be original is to return to the origin.”
독창적이라는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There are no straight lines or sharp corners in nature. Therefore, buildings must have no straight lines or sharp corners.”
자연에는 직선이나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다. 따라서 건축물에도 없어야 한다.
- 안토니오 가우디 -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현실로 구현해 냈을 때 그는 어떤 감정이었을지도 궁금하다. 가우디는 알았을까?
자신의 손끝에서 탄생한 곡선과 색감들이 도시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고, 후대 사람들에게는 바르셀로나를 ‘예술과 건축의 도시’로 남기게 될 거라는 걸.
아무튼, 가우디한테 입덕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