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말수가 적었다. 난 내 현실을 알았다. 어린 시절 모토는 ‘사고 치지 말자’는 것이었다. 모든 문제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다. 실수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안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말수가 적었고 장난도 없었다. 어디서든 ‘내 이야기’를 안 했다. 해봤자 우울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힘들다고 느낀 적은 딱히 없었다. 현실을 즉시 하니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명확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우울해질 필요는 없다. 인정하고 해야 하는 것들을 했다.
28년 평생 사교육을 받아 본 적 없다. 그럴 형편도 아니었고, 딱히 원하지도 않았다. 작년 이맘때 영어 학원에 다닌 게 인생 첫 학원이었다. 그마저도 내 돈으로 다녔다. 학창 시절엔 무료 인터넷 강의를 찾아들었다. 문제집 정도는 사줄 수 있는 집이 있는 게 다행이었다. 나는 해야 하는 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찾았다.
지금은 어엿한 직장에 좋은 직책도 있는 형은 어릴 때 소위 말하는 양아치였다. 어떻게 자수성가를 이렇게 했는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당시 형은, 집 나간 것은 기본이고 자주 학교에 안 가곤 했다. 같은 집이라곤 하나 형이 어릴 땐 잘 살았다. 당시 초등학교 졸업 때 양복을 아무나 입진 못한다. 환경적으로는 더 나았다. 그럼에도 형은 그랬다. 적어도 난 기억이란 게 생기고 잘살아 본 적이 없다.
성실하지 못했던 형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으니 괜찮은 걸까? 학교에 가야 하는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못 살면 그렇게 살아도 되는가? 네 식구가 단칸방에 살면 본인은 집을 나가야 하는가? 아니다.
세상엔 사연 있는 집이 많다. 다들 돈 문제도 가지고 있다. 불쌍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은 사람 없다. 그러나 그것이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 환경 탓을 하는 도구가 되면 안 된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필요하다.
입시를 준비할 때 수학과 영어가 내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도 수능에서 그랬다. 내가 학원만 다녔다면, 과외를 받았다면 달라졌을까? 솔직히 아니다. 나는 공부할 수 있었다. 모르는 문제를 선생님께 한 번 더 물어볼 수 있었다. EBS 문제집이 이해가 안 되면 해당 선생님께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친구에게 물어봐도 됐다. 난 안 했다. 성장할 욕심도 의지도 없던 거다.
가난을 무기로 삼지 말자. 그런 이야기는 우울할 뿐이다. 누가 누가 더 힘든가를 논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다.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내 인생을 얼마만큼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 모두 본인들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나도 내 불행한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돈을 주지도 않을 거다. 동정의 시선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태어난 장소가, 지금 있는 곳이 미래에도 내가 있을 곳이라는 보장은 없다. 누구도 내 운명을 적어놓지 않았다.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