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아빠를 만난다면

by 김이난달

당신은 황해도 출신 의사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당신은 전쟁에서도 살아남습니다.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러나 당신이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세요. 당신은 가난을 모른 채 자랐습니다. 당신의 유복한 유년시절을 당신의 아들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그 수려한 외모에 걸맞지 않아 보이는 여자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사랑한다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꼭 한 번은 해주세요.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매일 당신이 굶을까 밥상을 차리는 그런 여자입니다.


당신의 첫째 아들은 당신이 자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은 참 잘해줬습니다. 비록, 그가 너무 어려 가출을 한다거나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해도 너무 탓하지 마세요. 당신이 떠난 지금도 다른 아들들보다 당신을 더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막내아들은 가족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을 당신과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당신을 챙긴 아들은 다름 아닌 그였습니다. 당신과 가장 많이 싸웠지만 그 모든 순간이 애정이었음을 기억해주세요. 장례식이 끝나고 바로 학교에 갈 정도로 성숙한 아이입니다.


당신은 고혈압으로 평생 약을 먹습니다. 그리고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술, 담배가 앗아간 건 건강뿐이 아니었습니다. 한 모금의 담배 연기가 당신과 우리 사이에 공간을 만들었고, 한 잔의 술이 기에 벽을 세웠습니다. 순간의 쾌락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음을 잊지 마세요.


나는 당신의 둘째 아들입니다. 난 단 한 번도 당신이 나에게 잘해줬다고 생각한 적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에게 천장의 전구빛 뒤에 숨어 있던 달이었습니다. 이따금씩 멋쩍은 웃음으로 내 방 문을 열던 당신을 왜 몰랐을까요. 왜 나는 매일 아들에게 날씨 이야기를 꺼내야 했던 당신의 맘을 몰랐을까요.


난 단 한 번도 당신에게 뜨거웠던 적이 없었음에, 못다 한 말들을 남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