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할 곳을 찾다가 가까이 있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책을 빌리려면 인터넷 예약을 하기에 한가 할 것 같다. 벚꽃 보러야 왔었지만 꽃 지기 전 몇 번이라도 찾고 싶은 곳이다.
아름드리 벚나무에는 꽃구름이 걸려 있는 것 같다.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급히 뭘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동서에게서 통화할 수 있느냐는 문자를 받은 것이 생각나 그네에 앉아 전화를 건다. 이번 주 토요일에 어머니네 가서 나무를 심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다.
조카가 백합 구근을 파는 곳에서 실습을 한다고 좀 사면 어떨까 싶다기에 그러자고 응 한다. 나도 색깔과 향기가 있는 것으로 주문한다. 해마다 피어나는 빨간 백합은 꽃내음이 없으니 모자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는 여름밤이 백합 향기로 가득할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뒤란에도 꽃 천지가 되도록 미산딸 나무를 열 그루 주문해 놨다. 분홍 나비가 날고 백합이 밭 가득 일렁이기 시작하면 하뭇하겠다는 생각에 배시시 웃는다. 작년에는 황금측백나무, 황금사철나무, 철쭉을 심었다.
황금 사철
벚꽃 잎이 파라랑 날린다. 그네에 앉아 다리를 흔든다. 나에게 이런 시간이 있었던가. 항상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뻣뻣하게 살아온 것 같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데 무엇인가를 해야만 되는 쫓기는 사람처럼.
정물처럼 가만히 앉아 있자 새들이 포르릉 내려앉는다. 참새보다도 더 작은 박새인 듯하다. 쪼릉쪼릉 날면서 피리 소리를 낸다. 화단에 봄꽃들이 환하다. 꽃 잔디와 비올라 데모르, 종류별로 심겨있다. 나도 꽃처럼 다소곳이 앉아 봄이 된다.
황사가 이렇게 심한 날이 없었다. 먼지를 한 줌 가득 쥐고 흩뿌려 놓은 것 마냥이다. 하늘이 벚꽃을 보러 내려온 것 같이 꽃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흐려서인지 사람들이 오지 않아 둘레를 넉넉하게 차지한다. 벚꽃이 하르르하르르 꽃눈 잎 비 되어 나르다가 내려앉는다. 연분홍의 무덤이 쌓인다. 화단에도 땅에도 꽃잎에도 꽃잎이 내린다.
엊그제 장대비가 세찼는데도 벚꽃이 지지 않고 있다. 고요로움이 흐른다. 몸도 맘도 핑크빛으로 물들어간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앉아있다. 먼 산 바라기를 하다가 쌓여가는 것들에 눈을 주다가 시름없는 마음에 꽃구름이 담긴다.
정지된 것만 같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나마 몇 있던 사람들도 가버린 지 오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아직 걷지 않은 사잇길로 간다. 벚나무 밑을 지나면 흩날리는 꽃잎들이 나에게로도 나린다.
사부작사부작 산책길을 따라가면 털머위들이 꽃잎을 모으고 있다. 새파란 이파리에 미리 꽃이 핀다. 이 한때의 기억은 새록새록 돋아나 자주 찾아올 것 같다. 책을 빌리러만 왔지 홀로이 뜰을 밟으러 오지는 않았었는데 마음에 푸른 물을 뚝뚝 들이고 싶다. 움 돋쳐내는 나무들과 등꽃도 포도송이처럼 매달리기 시작했다.
무언지도 모를 것들로 부푼 속 바람을 시나브로 빼내야겠다. 굳어진 생각들에 나긋함을 입히고 스스로를 탓하지 말자. 혼자되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겠다.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과 사색이 있는 비밀처럼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곳으로 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