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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발

by 민진

언젠가 딸이 왜 우리 집의 그릇들은 거지반 다 흰색들이냐고 묻는다. 파랗고 빨간색이면 음식들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색깔이 있는 그릇들을 좀 사야겠네, 마음먹었지만 아직도 못 샀다. 마음이 없기도 하거니와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는 것에 이력이 나 있어 그런 것 같다.


삼십 대 중반에 막사발 열 개를 내 딴엔 거금을 들여 산적이 있다. 그 당시 막사발이 소중하다고 한참 뜨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재조명과 일본인들의 그릇 대하는 것들을 비교까지 하던. 지금은 임진왜란을 아예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무리 그릇이 귀하다고 전쟁을 일으켜 살생을 저지른 그들의 그릇에 대한 애착과 종교처럼 대하는 것을 옳다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집까지 찾아온 막사발은 곱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썩 밝은 색도 아니었지만 어딘가 정감이 가는 그릇이었다. 한 겨울 눈발 한 두 송이 들기 시작하여 찬바람이 휘몰아칠 때. 아궁이에 불을 살라 가마솥 한 솥 쪄놓은 물고구마를 담아놓으면 어울릴 것 같았다. 진득진득하게 노란 고구마 속은 그대로 단맛 덩어리였다.

막사발을 사자고 했던 친구 생각이 난다. 아이들 교육 모임을 하면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났는데 사 차원적인 느낌이 들곤 했었다. 남편에게 책만 실컷 읽도록 해주면 결혼하겠다고 했다며 나를 보며 싱긋이 웃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이비 종교에 빠졌는지 몇 달씩 집을 비우더니 아예 먼 곳으로 가고 말았다는 소식을 한참 뒤에 알게 된다.

그 친구가 좇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막사발 같은 일상에 만족할 수 없었을까. 어떤 것을 찾아 헤매다가 아들 셋을 남겨두고 홀연히 길을 떠나버렸나.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 교육청 행사로 중국 상하이로 단체여행을 갔었다. 거기서 그이의 큰 아들을 만났다고 한다. 어렸을 때 만난 기억으로 같이 다니며 사진도 찍고 길동무가 되었다. 돌아와서는 학교가 달라 만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우리 아이도 큰 편이 아니었는데 엄마 잃은 새끼 새처럼 자라지 못한 모습을 사진으로만 안타깝게 바라 보았다.

마구 쓰는 그릇이라고 막사발이라 했다지만 깨지는 그릇은 조심히 사용하게 된다. 손에 잘 잡히고 쓰임새가 편해야 늘 곁에 두고 쓴다. 우리 집에는 귀한 그릇이 별로 없다. 귀한 그릇이란 범주를 어떻게 정하느냐의 문제겠지만 식사를 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으면 되는 것 아닐까. 평범함 속에 귀한 것이 깃들어 있듯이 고귀한 것일수록 수수한 것들 속에서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애써 평범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에게로 온 막사발은 시나브로 하나씩 깨어져 집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세 개의 국그릇이 막사발을 닮아 있긴 하지만 유약이 잘 발라진 것을 보면 재질이 다른 그릇임이 분명하다. 그릇을 알아서보다는 부추김으로 유행을 따라 막사발을 사용해본 기억이 다이다.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 그릇들은 아침과 저녁으로 마주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애지중지 하지는 않는다. 그냥 밥을 푸고 국을 담고 찬을 옆옆이 놓을 뿐이다. 날을 함께 열어가는 그릇들이 진정한 막사발은 아닌지. 하루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 있는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국 한 대접이 속을 든든하게 한다.

멋스럽고 고급스럽다는 값비싼 식기들에 음식을 담아먹으면 그 사람 인품이 고결해 지는지 알고 싶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아무리 비싸도 조리 장수 매끼 돈을 내서라도 사고 말 텐데. 어떤 그릇이라도 가까이 자주 사용하면 막사발이며 소중한 그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기회가 되면 막사발을 다시 들이고 싶다. 전에는 멋모르고 사용했다면 이제는 멋스러움으로 식탁에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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