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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앞 꽃밭

by 민진

그 마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지가 언제부터였을까. 육 대부터 살기 시작하여 지금 우리 아이들이 십육대니 한참을 거슬러서부터 내려온 터전이다. 산이 깊고 물이 맑아 피난 가던 왕이 쉬어 갔다고 마을 이름까지 바뀐 역사가 있다.

자식들이 다 객지에 나가 살고 홀로 되신 어머니만 큰 집에 덩그렇다. 아침을 맞고 낮을 지나 저녁의 긴 하루. 밭고랑에 풀 한 포기 이는 것을 못 보시는 어머니 성격에 잡풀이 우쭉우쭉한 밭을 보면 마음이 어떠실지. 거동이 예전 같지 아니하신 어머니가

밭을 짓지 못하시게 자식들이 다른 것들을 심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감나무도 심고, 약나무도 심고, 꽃도 심는다. 올해는 미산딸 나무와 백합을 심었다. 주인이 오지 않는 밭에 활짝 피어 오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번 참에 남편과 어머니 뵈러 가서 올해 심었던 아로니아 열매를 조금이나마 따러 갔더니 백합이 한창이다.

정년과 함께 타지에 삶의 둥지를 튼 밭 위의 사람들의 집은 나날이 여물어 가는 듯 보기에 좋다. 꽃들과 과실수들이 곱다. 꿀벌까지 치면서 전원생활을 충분히 누리는 것 같다.

어머니에게 밭을 에어컨 한 대 값에 팔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제들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어머니만 인심을 붙들고 싶은지 잠시 흔들렸던 것을. 자식들이 반대를 하니 어머니도 더 이상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어쩌면 그네들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은 다른듯하지만 같은지 모른다. 자기의 유익을 따르는 것으로 자연스레 따라오는 생각들이다. 그들은 우리 밭을 사들이게 되면 주차장과 정원을 번듯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딴에 그들의 필요를 따라 팔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겠기에.

우리는 우리대로 형제 중 누구라도 고향으로 내려올 수도 있고. 만약 매매를 하게 되더라도 가까이 밭이 딸려있는 집과 그렇지 아니한 것은 가치 면에서 크게 차이를 보일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한다. 전망이 좋으니 집을 지어도 좋겠다는 의견들도 있다.


세월이 가면 그 밭과 집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땅과 집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겠지. 미래의 일이니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꽃도 주인이 있는 것 같이 분명히 그 집과 밭의 주인은 정해져 있을 것만 같다. 파니 안 파니 하더라도 주인은 분명히 나타날 것이기에 너무 조급할 필요도 없고, 안 판다고 우길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할 뿐.

어머니 마음이 불편하신가 보다. 밭을 둘러보더라도 한낮 점심시간에 나가 본다고 하신다. 자기 땅 둘러보는데도 눈치를 보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언짢다. 생각이시겠지만 얼굴을 봐도 전에처럼 말도 잘 안 붙이고, 잘 들여다보더니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작은 일에도 서운해하신다. 그분들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머니 스스로 마음을 누른 누름돌은 언제쯤이나 치워질지가 걱정이다.


그이들이 가꾼 둔덕에 심긴 복숭아나무 세 구루에 꽃 같은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결심한다. 밤나무만 두 그루 가장자리에 서 있는 아래 밭에는 복숭아를 심기로 한다. 위에 밭에는 아로니아 몇 그루 더 심고, 블루베리를 심어야겠다.


블루베리 열매를 먹으려면 보리수를 심어야 한다고 한다. 빨간 보리수 열매들이 새들을 유혹하여 블루베리를 지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블루베리가 산성 땅에서만 된다고 해서 심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베리를 키우는 분이 그냥 땅에 심어도 잘 된다고 한다. 귀가 번쩍 뜨인다. 블루베리 꽃은 작은 은방울꽃처럼 조롱조롱 달린다. 하얀 꽃이 지고 나서 분홍 열매들이 검은 색으로 바뀌기까지 참 예쁘고 앙증맞다. 새들을 보리수에 눈을 돌리게 한 다음 블루베리는 사람이 야금야금 따 먹겠다는 속셈이다. 유인 나무를 심으라는 이야기에 풋 웃음이 나온다. 블루베리가 익으면 향기가 날 텐데 새들이 속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그대는 누구를 위하여 밭을 가꾸는가. 그 언젠가 누군가에게 고마운 일이 될 수 있도록 밭을 규모 있고 유익하게 가꾸는 궁리 중이다.

지금 그 집 앞 밭에는 백합이 향기를 날리고 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잠깐 쉬어 구월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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