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빈혈이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셋째를 낳고 병실에 올라와 있는데 자꾸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견디는데 점점 그 수위가 높아져 간다.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간호사실에 연락해 달라고 하고는 정신 줄을 놓았다.
아득하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정신 차리세요.’하는 말이 가물가물하다.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힘겹게 눈을 떠보니 간호사들이 내 침대차를 밀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 그 곁에 남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이제 의식이 드느냐며 정신을 번쩍 차리라 한다. 잘 못하다간 큰 일 난다고 간호사가 말을 건넨다.
의사가 수혈을 하라고 했다. 수혈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다. 당시 수혈을 하여 잘못되는 일이 자주 매스컴에서 보도되곤 해 겁이 더럭 났다. 액체로 된 철분제를 먹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먹다가 그마저 시들해지고. 그때 수혈을 했으면 괜찮았을까. 좀 더 건강하게 살아 올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이십 대에 다니던 교회의 남자 집사님 한분이 수술을 하게 되어 에이형의 피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와 몇 명이서 차를 타고 수혈을 하러 가는 중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연락을 받았다. 군인 몇이 와서 수혈을 하고 갔다는 거였다. 청년들의 피를 받았더니 힘이 불끈불끈 난다는 말과 함께. 젊은 피와 나이 든 피가 따로 있나 싶었다.
어느 순간 몸이 말을 하는 것 같다. 가서 누워-, 누우라니까. 하던 일을 멈추고 눕는다. 누군가 나를 조정하는 듯하다. 왜 이럴까 하면서도 병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미련하게 견딜 때까지 견디다가 더 이상 못 견딜 만큼 되어서야 병원에 간다. 적혈구가 깨지기까지 할 정도인데 어떻게 이 상태로 있었느냐고. 십삼이 정상인데 칠까지 내려가 있다고 철분제를 처방받는다. 빈혈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지내온 세월이 오래다.
두어 달 전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철분제를 먹지 않아도 되겠다고 한다. 알 약하나 줄이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날개가 나와 날아오르는 기분이다. 약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이야말로 꿈에 그린 삶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한 줌씩 현란한 알약을 털어 넣는 것이 미래의 내 일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오늘 다시 가서 누우라는 몸 소리를 듣는다. 오후 내내 잔다. 한 학기를 마쳤다고 긴장이 풀어진 탓일지도 모른다. 저녁 겨우 해 먹고 또 잔다. 이 정도로 자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럴 때 어른들은 잠 산에 묘를 잘못 써서 그런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내 핏속에 왜 자꾸 틈이 생기는 걸까. 무엇이 내 피를 자꾸 훔쳐 가는 것인가. 선근종이 있다고는 했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는데. 검사부터 하고 주는 약도 착한 아이처럼 꼬박꼬박 먹어야겠지.
그이는 어렸을 때부터 빈혈이 심했다. 몇십 년 전이니 알약은 없고 검붉게 되어있는 철분제가 병에 담겨 있었다. 병에 그려진 눈금만큼씩 마셔야 했다. 먹기 싫었다. 피 냄새 같은 것도 맡아지고. 할머니 앞에서야 어쩔 수 없었지만 할머니가 어디 가시면 그날 양만큼씩 대나무 숲에 몰래 살짝살짝 버렸다. 오늘은 이 나무 내일은 옆의 나무, 돌아가면서 사이좋게 조금씩 나누었다. 그래서 대나무가 튼튼해져 쪽 곧은 것인지도 모른다. 대나무와 사이좋게 약을 나눠 먹어서인지 그녀는 건강하다.
종일 자다 깨다 하면서 호사를 누린다. 아프다는 것은 쉬어 가라는 몸의 황색 신호등이다. 이렇게 환한 낮에도 누워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는 병이니 그대로 한가하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골똘하다. 핏속에 찾아온 틈 때문에 쉴 수 있는 틈이 난다. 가만 나를 돌아본다. 틈이 틈을 부르고 잠시 쉬어가는 찬스가 주어진다.
반년 살아냈으니 새로 주어지는 남은 해를 잘 살아보자는 신호 같다. 그렇게 보면 틈이 벌어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할 일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나를 돌아보고 단디 하라는 외침일 수 있다. 몸에 틈이 생기니 그 사이로 나를 볼 수 있는 정신의 틈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