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언젠가는 흠뻑 비로 내리고

by 민진


바바리는 내겐 너무 컸다. 줄여 입어야지 생각만 하고 옷걸이에 걸어놓고 바라만 보았다. 딸이 유행이 지난 것이어서 많이 주지 않고 샀다고 하는데, 명품 수선하는 곳에 맡기면 산값보다 비쌀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딸애가 왔기에 한번 입어보라고 했다. 키가 나보다 십 센티는 크고 체격도 좋아서 맞춤이었다. 거기다 군화처럼 생긴 신발을 신으니 모델 느낌이 났다. 내가 입을 때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보이던 옷을 놓고 ‘명품 옷이 왜 이래’ 하면서 속으로 비웃었는데 딸이 입으니 자태가 달라져 보인다. 멋스러움을 보고 내게 맞는 옷을 입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신발을 사러 마트에 갔다. 점원들이 내놓은 신발을 이것저것 신어 보면서 괜히 우쭐해진다. 멋있는 딸이 옆에 있다는 것 때문에 뿌듯하고 자신이 있었다. 딸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구경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늘 같이 있지 못하기에 아쉬움 가득인데 오랜만에 모녀간의 정을 듬뿍 나누었다.


바람은 참 여러 가지로 다가온다. 자식들과 산책하고 차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지개처럼 아롱진다. 그런 작은 꿈들이 하나하나 구슬처럼 꿰어지면서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인가.


노년에는 무엇을 하며 지내야 될까, 건강한 세월을 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할 것인가. 꿈에 대한 노력이 헛되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두려움은 동전 앞 뒤 면처럼 늘 붙어있다. 이루지 못한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지고 의기소침해진다. 당당하게 밀고 나갈만한 나이가 아니지 않을까. 감당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늘 자신에게 물어보며 초조해한다. 그러면서도 이 나이에도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위로를 해 보기도 한다.


햇빛이 쏟아지는 강가를 말없이 혼자 거니는 것도, 꽃씨를 심으며 피어날 꽃을 상상하는 것도, 친구와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소중한 예쁜 꿈이다. 먼 꿈보다는 금방금방 이룰 수 있는 꿈을 꾸는 것이 행복이다. 바라는 것들이 소박해졌다는 것일까. 꿈과 꿈 사이에서 우리는 늘 왔다 갔다 하면서 오늘을 사는 것이지 않을까. 꿈은 겨우내 피고 지며 알록달록함을 보여주는 ‘란타나’ 같은 것인가.


언젠가 버스정류장 맞은편 건물에 비친 구름의 풍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구름이 그린 그림’이라며 이곳저곳에 자랑을 했다. 뜬구름들이 거울과 같은 건물을 지나가니 하나밖에 없는 풍경이 된다.


아름다움은 순간이지 않을까. 그 순간을 우리는 그리워하면서 목말라하고 기다리는 것은 아닐는지. 꽃들도 숭어리를 만들고 피기까지의 시간은 길지만 순간에 피어나 어느 날 져버린다. 그러나 그 꽃의 향기와 빛깔이 가지는 고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행복으로의 초대를 하지 않던가. 그것도 지나가는 구름처럼 찰나의 기쁨이다.


아름다운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내가 되는 것인가. 감정의 구름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하며 흘러 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에 떠다니는 작은 뜬구름들이 하늘을 요리조리 다니다가 뭉치고 뭉쳐 비로 내린다.


브랜드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딸에게 들킨 것은 아닐까. 어떤 옷을 입더라도 내면의 가치가 중요할 텐데. 그런 것 보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 더 신경 썼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 때문에 딸이 ‘버버리’의 바바리를 사 오지는 않았을까. 그 바바리는 나에게는 뜬구름이었지만 딸에게는 비로 내리는 구름이었다. 내게 맞는 생각들과 꿈들과 아름다움들을 가지런히 꿰어보며 언젠가는 흠뻑 비로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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