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공장

텃밭은 계속 가꾸어야지

by 민진


담양으로 해서 무등산으로 등산을 갔던 아들들이 돌아오는 날, 남편에게 오는 길에 텃밭에서 봄동을 뽑아오라고 부탁한다. 배추가 겨울인데도 초록을 머금고 한 입 씹으면 아삭거릴 것 같이 빳빳한 힘이 들어 있다.


열 평 정도의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셋째 넷째가 아토피를 앓으면서부터이다. 밭을 빌리던지 텃밭 분양을 받아 채소를 가꾸었다. 아이들이 다 커서 둥지를 떠났지만, 여전히 텃밭에 뭔가를 심어 가꾸고 뜯어다 먹는다. 토끼처럼.


밭을 오래 가꾸었다고 채소를 키우는 실력이 늘지도 않는다. 다만 어느 때 무엇을 심어야 되는 것은 알고 때맞추어 심는다. 남편과 같이 풀 뽑고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으면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기에 계속하는지도 모른다. 약도 치지 않고 퇴비로만 짓다 보니 잘 될 때도 있고, 온통 풀밭이 되어 사람들 보기에 민망할 때도 있다. 곧 새봄이다. 감자를 놓고 완두콩과 상추 열무를 심을 시기다.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보고 아들이 “영화에 나온 것들을 다 해 본 것 같아요” 하는데 마음속에서 내가 참 노력했구나! 하는 뿌듯함과 다행이야 하는 마음이 겹쳐진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자연을 알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고슴도치 같은 밤 따기와, 감 따기, 고구마 캐기 같은 것들은 할머니 집에서 했다. 사과는 남쪽인지라 키워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집에 오갈 때 끝도 없이 펼쳐진 사과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사과들이 얼마나 마음을 빼앗아 가던지. 사과나무를 키워보고 싶어서 시댁에 몇 해 전 두 그루 심었다. 올해는 아쉬운 대로 애기사과 나무라도 화분에 한그루 심어야겠다. 망울망울 열매들이 기쁨으로 매달리지 않을까. 아들이 자기는 영화를 재미나게 보았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반응들이 시원치 않더란다. 경험을 해본 것과 해보지 않는 것의 차이와 흥미의 폭이 다르기 때문인가.


영화는 영화일까!
보는 시각에 따라 아름다움으로, 그저 그렇게 다가올 수도 있는가. 요리를 하는 것도 단순하지 않은데. 술을 빚고, 떡을 만들어 먹고, 내가 한 가지도 해보지 않는 것들이 나와서 주눅이 들었다. 문학의 힘을 빌려 시골의 모습을 보여주고, 삶을 다른 각도로도 생각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지 않을까. 사계절의 변화가 너무 예쁘다.


순천 국가정원에서 식물공장을 보게 되었다. 미래에는 식물을 키우는 냉장고와 비슷한 것을 대여하든지 사든 지 해서 텃밭을 대신할 것 같다. 실제로 우주선에서 상추를 가꾸어먹고, 더 많은 것들을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연구 중이다. 채소들은 농약도 치지 않고 바람이나 해충의 피해도 없어 깨끗하고 맛이 좋다고 한다. 식물이 원하는 빛만을 주고 양분은 물에 녹여서 스며들게 하여 싱싱한 것들이 식탁에 오른다.


땅을 삽으로 뒤집어 퇴비를 섞고 이랑을 만든다. 파란 하늘에서 뿌려지는 햇살을 받으며, 고사리 손으로 흙에 모종을 심는 아이들. 풋고추를 따며 모기에도 물리고 방울토마토의 새끼손톱만 한 열매가 커가면서 연한 연두에서 주홍으로, 주홍에서 빨강으로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을까. 보라색 가지를 따는 것은 재밌어 하지만, 요리는 싫어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에는 가지를 좋아하지 않을까.


생김생김이 다 다른 씨를 뿌리면 시금치는 삐죽이 바늘처럼, 열무는 은행잎처럼 마주 보고, 쪽파는 운동화 빠는 솔처럼 뭉텅 올라오는 것들은. 이야기로 그림책이나 티브이에서만 보게 되지 않을까. 달 밝은 밤에 고라니가 몰래 와서, 맛있는 채소들만 야금야금 먹고 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겠구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배추 잎들을 한 장 한 장 뜯어 쏟아지는 물에 씻는다. 묻었던 흙들이 물살에 떠내려간다. 텃밭은 계속 가꾸어야지. 아무리 최첨단 시스템이 변화를 가져와도 자연과 함께하는 삶들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보랏빛 엘이디 불빛을 쐬면서 자라고 있는 채소들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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