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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Mar 09. 2024

봄소식

    겨울이 봄 오는 것을 시샘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낮은 온도를 살펴볼 때마다 앞에 ‘-’ 붙여진 것을 지우개로 지워 버리고 싶습니다.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어는 것 같아서요. 어렵사리 피어난 진달래가 숨을 죽이고 손을 호호 부는 것 같아 애처롭습니다. 거실에 들여놓은 풀들을 이제는 내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식물 등이 양 옆으로 거인처럼 비추고 있지만 제라늄들이 두루미처럼 목을 쑥 빼어 보기에 안쓰럽습니다. 어제는 순 치기를 야물게 했습니다. 순 따기를 한다는 것은 꽃을 보는 시간을 뒤로 물리는 것이어서 웬만하면 참아보려고 했는데 멀대 같은 것을 보니 손이 근질거렸습니다. 날씨가 좀 풀려야 비닐하우스 안에 들여놓은 수국들을 내어 놓고 제라늄들을 그 자리로 내 몰 텐데요.


  설에 동생네 가족이 멀리서 온다기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풀밭인지 사람 사는 곳인지 모르게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풀들을 한 겨울에 내어놓으면 바로 얼부풀어버리고 말 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거든요. 잠자리야 호텔을 잡아주면 되지만 밥 한 끼는 내 손으로 해 주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옛날 집이라서 저희 부부가 사용하는 방의 미닫이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소파의 방향을 바꾸고 정돈을 하자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풀들은 그대로 푸르게 두고요.


  풀이 아닌 나무를 키우자고 마음먹은 지 꾀 되었지만 쉽사리 방긋거리는 풀꽃들을 내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꽃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눈 맞춤을 하고 마는 이것을 뭐라 해야 할까요. 여러 다양한 중독 중에 꽃 중독이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겠습니다. 참지 못하고 꽃을 사 모으는 것도 홈쇼핑을 보고 쓰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서 쟁인다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그래도 요즘은 꽃 파는 것을 덜 보고 펜으로 공책에 적으며 마음을 누그립니다.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시간을 늘리면 꼭 필요한 것만을 사게 된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레몬나무를 두 그루 들였습니다. 레몬이 열려 있는 나무를 볼 때마다 키우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지요. 가격도 괜찮고 상태도 좋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보라와 흰색이 어울린 꽃이 피어서 왔습니다. 코를 들이대면 향기가 진합니다. 잘 키워서 가을에는 노란 레몬을 보여 드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구해놓은 인산칼슘 비료도 조금 주었습니다. 꽃이 핀다고 다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작은 화분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무들은 자기가 키울 만큼만 남기고 풋것들을 떨어뜨립니다. 열매를 붙들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어야겠습니다.  열매 달리는 나무를 여럿 키워 본 것은 아니라서 더 말을 하면 혼날 것 같아 그만하렵니다.


  작년에 졸업 선물로 받았던 ‘리틀 펀치’라는 수입 목 수국이 잎만 무성하고 꽃이 안 피어 못내 서운 했었습니다. 월동온도가 마이너스 삼십도 까지여서 안심하고 밖에서 겨울을 났습니다. 아이스크림 같은 하얀 꽃을 피워서 시간이 갈수록 붉게 물드는 개화 기간이 긴 품종이라는데. 올해는 꽃 볼을 둥둥 띄워 보여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피어나면 득달같이 써서 올리겠습니다. 수국 종류가 몇 종인지 세지를 않아서 모르지만 올해는 볼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급하게 싹을 틔우는 여우오줌도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시민정원사 실습 중 한 개 얻어와 심었는데 싹을 보여주니 기특합니다. 요즘 유행의 바람을 타고 있는 다 년생 화초거든요. 무리 지어 피어 있으면 환상이 따로 없는 것 같이 묘한 느낌을 줍니다. 색깔도 여러 색이어서 정원이 있는 분들은 몰라서 심지 않을 수는 있지만 아는 분이라면 한 개로는 만족할 수 없어 너르게 땅을 내어줄 수밖에 없답니다.


  몇 주 글쓰기를 쉬었습니다. 숨 고르기를 했으니 봄소식부터 전하기로 합니다. 새로운 소식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은 오후에 가니 오전에는 강의를 들으면 되겠습니다. 딸들이 다시 대학생이 이라고 놀립니다. 셋째인 둘째 딸이 장학금이라면서 학비를 댔습니다. 현금으로 돌려받지는 않고 출판물로 받겠다는 압력을 넣어서 고민입니다. 얼마 큼의 깊은 샘물을 끌어올릴지는 모르겠지만 하는데 까지는 해보려 합니다. 환갑의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공부이니 새봄을 맞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내 안에도 새로운 잎들이 펼쳐지고 때론 꽃 봉오리도 탐스럽게 피어나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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