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작은 평화가 찾아오곤 했다. 재작년 겨울도 탈 없이 나고 새끼를 분양까지 할 정도로 건강했는데 무슨 이유일까.
겨울이 오면서 추울까 봐 보온을 해 주었는데도 한두 마리씩 배를 드러내 놓고 움직이지 않는다. 동그란 유리 어항을 사 와서 방으로 옮겼다. 거실보다는 외풍이 없고 따뜻한데도 계속하여 죽어가는 것이다. 키우는 것에 늘 자신 있어하는 내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낙심이 되고. 어항을 청소하는데 넣어놓은 행운목을 들어내고 보니 껍질이 미끌미끌거렸다. 여름에 항아리 뚜껑에 키울 때는 면적이 넓어서 물높이를 낮게 해 주었다. 공간이 좁아지자 물이 깊어지고 나무 위까지 찰방거렸다. 썩지 말라고 약품처리를 한 것이 시나브로 녹아나서 물고기들이 병들었나 보다. 한두 마리라도 남아서 돌아다닐 때는 살 수 있겠지 기대를 버리지 않았는데 마지막 남은 녀석마저 가버렸다.
전에 열대어와 금붕어를 키우고, 어른 손바닥을 넘는 민물고기도 수족관에 키웠다.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현장이 펼쳐지자 강에다 살려주었다.
구피를 키우게 되었다. 공기방울이 없어도 겨울에 히터를 틀어 주지 않아도 잘 적응하는 순한 것들이었다. 딱 내 취향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플라스틱 수초를 그대로 둘 걸. 살아있는 것이 더 운치 있고 물고기들도 좋아하겠지! 하며 바꾸어준 것이 독이 될 줄은 몰랐다.
수초 가지 사이마다 숨어있고 싶을 때 쉬라고. 새끼를 풀숲에서 낳으라는 비밀의 공간이다. 사람만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생명 있는 것들은 다 고요한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물풀 속에, 돌멩이 뒤에 숨어 무슨 생각을 할까. 외로움의 시간을 지나 다시 무리 지어 다닐 수 있는 힘을 마련하는 것인가. 작은 물속 세상이다. 물가에 내어 놓은 아이처럼 물속 얘들이 걱정이다. 잘한다고 마음을 더 기울이던 것들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또 배운다. 아픈 마음을 다독인다.
구피를 사 왔다. 빨강과 파랑 노랑을 쌍으로 샀다. 세 마리는 덤으로 받았다. 방을 환기시킨다고 창문을 열어놓고 닫는 걸 잊어버렸다. 추워서 모두 움직이지를 않는다. 밤새 전기방석에 어항을 올려놓고 다음날 히터를 사다 꽂아 주었다. 너무 늦었는지 한 마리씩 몸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노란 녀석 암컷 한 마리만 살아서 말똥말똥 어항 안을 헤엄친다. 가까이 가면 잽싸게 다가와 밥을 달라는 건지 눈을 맞춘다. 언제부터인가 배가 불뚝하다. 먹이를 많이 먹었나. 아니면 새끼를 품었나 했다.
먹이를 주면서 살핀다. 어제까지 혼자 더니 오늘 고물고물 한 것들이 곰실곰실거린다. 저 혼자 외로웠을까. 새끼가 여러 마리다. 엄마라서 살아남았을지도 한 핏줄이다. 같이 사러 갔던 딸에게 전화하고, 집에 온 남편에게 보여준다. 남편이 저 혼자 애를 낳나. 아니지 전에 가졌겠지. 달포 뒤에 식구를 더 불린다. 모든 치어들은 낳자마자 힘세게 헤엄치는 줄 알았다. 점보다 조금 큰 검은색의 아기들이 위 로위로 몸을 솟구치려다가 밑으로 쳐지곤 한다. 그중 제일 작은 녀석을 형들이 괴롭힌다. 힘이 붙기까지 그 조그만 것들이 기초체력을 기르나 보다. 쉬다가 몸을 띄우고 꼬리를 흔들며 오르기를 반복한다.
어른이 되기까지 여섯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무슨 색들을 입고 나타날까. 성비는 어떻게 될까. 꼬리지느러미는 우아할까. 호기심이 날개처럼 돋아난다.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꼬리 점 같은 작은 것들이 가늘 거 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