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는 곳에는 그림자도 없다. 빛의 세기가 높을수록 뚜렷하다. 오후에는 길이를 달아낸다. 내가 걸으면 그림자도 걷고 내가 멈추면 그림자도 멈추어 선다. 스스로는 뭔가를 할 수 없는 따라쟁이다. 달밤에 그림자는 옅다. 힘이 없이 사분사분 따른다.
사랑초가 진보라 빛의 나비 떼들 같다.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마당에 화분을 내어놓는다. 사진이 빛의 예술이라는 것을 느껴본다. 바람이 분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자주색의 잎들이 바람 따라 그림자의 방향이 바뀐다. 더 커지다가 작아지기도 아예 보이지 않기도 한다. 저녁, 이슬이 내리는 시간에 살포시 꽃잎 위에 날개를 접고, 잠자는 나비처럼 잎을 모은다. 꽃송이를 키운다. 가느다란 목이 학처럼 뻗어 나 연분홍 꽃이 향기처럼 하늘거린다.
보따리가 풀렸는지 연일 바람만 놓여진다. 집안에만 갇혀있기가 갑갑하다. 민망하여 텃밭에 풀이라도 뽑으러 가야겠다고 생각다가, 바람이 거세니 제풀에 가라앉는다. 호수를 서성인다. 노랑나비 한 마리 팔랑거리며 곁을 스쳐간다. 나폴 거리는 것이 신기로워 그 나라에는 코로나 없나? 하고 묻고 싶어 진다. 무꽃이 피어나는 어린 날에 배추흰나비들과 노랑나비가 원을 그리며 날았었다. 배추 노랑나비는 없을까 찾아보니 흰나비 과에 속한다고. 사촌이었구나 싶다. 샛노란 나비를 만나니 마음에 한 가닥 희망이 부푼다. 날아다니는 꽃을 본 것 같다.
호숫가에 벚나무들이 가지를 길게 물 끄트머리까지 늘어뜨린다. 손가락을 물속에 집어넣으려는 듯 내민다. 물고기를 낚기 위해 꽃 낚시 대를 드리운 것 같기도 하고, 꽃 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가지를 뻗치나 싶다. 꽃눈마다 핑크빛이 선연해진다. 몇 주 뒤면 거침없이 꽃송이를 터칠 것 같다. 바람 속의 봄기운이 스미었을까. 꽃이 피어나는 것은 기쁨이다. 다시금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외침이다. 가슴이 부듯해진다.
저녁 뉴스 시간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뜨뜻하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세신다는, 새가 팔리는 것 까지도 간섭하신다는 분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왜 이리 초라한가. 그분 앞에 있기나 한 것인지 돌아다봐진다. 누가 잘하나만 부추기며 진정한 사랑의 향기는 어디다 싸매어 두었는가. 투명망토를 걸치고 있기나 한 것처럼 행동했구나. 바이러스라는 공공의 적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누추함을 감추어오지는 않았을까.
빛과 그림자는 떨어질 수 없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달나라의 등기를 소유하는 시대이지만 아주 작은 구멍이 나서 무너져 내린다. 빈손과 가난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용히 빛을 따라가는 그림자이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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