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에는 꽃씨를 뿌렸다. 봉숭아와 금송화 여러 가지다. 메리골드에는 몸에서 흡수하기 좋은 루테인이 들어 있다고 해서 꽃차를 만들어볼 생각으로 심고. 옆 두둑에는 스피아민트와 박하가 자란다. 잎들을 베어다가 허브차를 만든다.
꽃 기르기도 농사다.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꽃빛으로 물들고. 꽃차와 꽃 음식이 뜨고 있으니 누가 효자 노릇을 할지는 알 수가 없다. 『꽃차 잎차 꽃 음식』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꽃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을 넘어 내 몸에 꽃물을 들여 볼까. 밭에 자주 가지 못하기도 하고 식구도 줄었다. 수요와 공급곡선 때문에 채소를 조금씩 기르려고 노력하고.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사월이 오자 상추와 대파를 심었다. 청양고추와 오이 고추 다섯 그루씩 심고. 넝쿨을 뻗지 않는 주키니 호박과 오이와 가지. 밭에 다녀온 남편이 고추 두둑 바깥쪽으로 뭘 심었나? 땡초요. 할아버지가 뽑아내고 일반고추 모종을 큰 것으로 바꿔치기를 했던데.
텃밭 자리가 나오자 아는 할아버지에게 소개를 했다. 농사꾼도 아니었으면서 초보 답지 않게 고추농사를 너무 잘 지었다. 날마다 밭에 가서 살다시피 한다. 갈 때마다 마주치지 않는 적이 없다. 즐거워 보이시고 고마워한다. 재미를 붙이시더니 그 옆 밭마저 점령했다. 오히려 할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될 정도여서 몸 생각하시면서 일 하세요. 하고 말씀드리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우리에게 참깨를 심으라느니 요구가 많아진다. 우리의 텃밭농사가 시쁘게 보이는가 보다. 꽃이나 심어놓고 한량처럼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토끼처럼 채소나 뜯어먹는 것이 어르신의 눈으로는 이해가 안 되겠지. 비가 자주 오는 여름이면 풀이 우쭉우쭉 키를 넘으니 한심해 보이고.
농사짓는 모습이 설어 보이는가. 다른 모종이 남으면 심어놓는다.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우리를 위하고 더 좋은 것을 심어 주는 배려다. 어쩌면 자신과 같이 열심히 농사를 하라는 무언의 압력은 아닐까. 조금씩이라도 내 손으로 심고 가꾸어, 작으면 작은 대로 볼품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한다. 우리는 소일거리 삼고 바람 쐬면서 마음을 식히는 데에,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다. 거기다 더하여 좋은 채소를 먹는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모든 것을 눈에 보이는 경제 가치로만 저울질을 하려고 드니. 세대의 차이와 가치관이 다른, 접점이 딱 마주친 느낌이랄까.
청양고추가 노지에서 그 뜨거운 햇볕을 받고 얼마나 매워지는지 된장찌개에 한 개만 부러뜨려 넣으면 매콤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사서 먹는 매운 고추는 하우스에서 재배하기에 텃밭의 매운맛과는 견줄 수가 없다. 거기다가 직접 내 손으로 키웠다는 뿌듯함이 기쁨을 배가시키고.
가지가 열리면 참기름 잔뜩 넣어 조물조물 무치고 , 호박은 호박전과 된장국을 끓이고, 오이는 오이냉국을 시원하게 만들어 먹으려는 계획이 다 서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일이 소꿉놀이 같은가 보다. 당신 맘대로 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한마디 안 할 수는 없다. 웃으면서 '왜 땡초를 못 먹게 하세요.' 정도. 같이 어울려 살려면 양보가 필요해지는 부분이다.
농사꾼처럼 농사를 안 짓는다고 채근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텃밭개념을 분명히 해야한다. 거기에 올인하면 다른 것에 구멍이 뚫리기 때문에 부러 마음을 다잡는다. 부가가치를 따진다면 어떤 것이 더 할 것이냐는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할아버지의 농사나 우리의 소꿉놀이 농사나 별 반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가감을 나름대로는 한다. 할아버지의 생각이 앞서다 보니 우리가 답답이 일 것이고.
서로 다른 계산법으로 산다. 그냥 웃기로 한다. 할아버지의 배려는 계속될 것이고 존중받고 싶은 우리도 계속 소꿉 농사만 지을 것이니 평행선을 그을 뿐이다. 글을 쓰면서 허브차를 끓여왔다. 따끈한 차 한 잔이 나를 데우고 맑게 한다. 이 즐거움을 고추농사와 맞바꾸지 않으련다. 청량초를 다시 사다 심어야 되나, 할아버지가 심어둔 그대로 두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