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게 앉아 메모를 한다. 주어질 일들과 순서들을 하나하나 적어본다. 실수했던 부분들을 점검하면서 머리에 나비물처럼 쫙 펼쳐본다. 도움이 될지는 지나 봐야 안다. 오후 여섯 시부터 새벽 네 시까지 일하는 것이 적응이 된다.
바쁠 때는 도떼기시장이다. 밀려오는 주문에, 손님들의 요구사항에 눈 코 뜰 새가 없다. 적당한 주문과 손님이 오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은 늘 무참히 깨어진다. 사장의 얼굴에 은근히 번지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밤이 이슥해지면 모두들 진이 빠진다. 블랙홀에 들어서는 것처럼 얼굴 근육이 달라진다. 노란 신호등. 품격이라는 것이 방전된다. 감정의 삐죽함이 뱀이나 개구리처럼 튀어나온다. 촛자였을 때 쏟아지는 ‘군대에서 그것도 안 배웠어’하는 식의, 육두문자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긁기.
생각을 정리해보고 행동반경을 그려보고 간 날 실수를 하지 않았다. 손발이 맞을 때가 되었나. 처음에는 힘이 고갈되는 것을 모르고 계속 야단만 맞았다. 잘못한 것에 대한 지적이야 당연하다. 그렇지 않은 것도 분풀이 대상이 되는 것 같아 자존심에 금이 가 실수를 한다. 어느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팔다리가 따로 논다. 일의 속도가 느리다. 이 정도밖에 아니었나. 실망은 갈수록 커지고. 내가 아닌 이상한 사나이가 있는 것 같은. 빙의라도 해서 육체만 남겨놓고 날아가 버리고 싶었던 순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물건이 된 것 같았다.
두 달이 내일모레. 내 몸을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시간이다. 몸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배터리 용량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적은 것임을 확인한다. 에너지가 바닥나기 시작하면 생각이 흩어진다. 총알을 준비해 간다. 초콜릿. 작은 것을 한 개씩 입에 넣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달라지는 몸. 조각조각 부서져 입자가 되어 수증기처럼 혈관 속으로 피어오른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듯이. 아편도 이런 느낌일까. 열 시쯤에는 커피 한잔을. 좋아하지 않아서 무슨 커피를 저리들 마시나 싶었다. 지금, 내 몸이 카페인을 들여보내라는 신호를 한다. 커피에 흥미가 생겨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 볼까 생각 중.
지칠 때마다 검은색의 네모 한 개를 건전지처럼 입에 넣는다. 너무 의지하나. 씁쓰레함이 인생의 맛이라고 했던가. 입혀진 달달함은 금세 녹아내린다. 내 힘으로 세상이란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하는 오롯한 배와 같이, 항해는 이미 시작되었는가. 사탕을 굴리던 시기를 지나 발을 이미 내디뎠다. 배터리가 채워진다. 머리가 돌아가고 쳐져 있던 팔과 다리에 힘줄이 돋는다.
일요일도 나올 수 있느냐는 러브콜을 받는다. 과제가 있어서 어렵다고 여유롭게 말한다. 처음에 좀 친절하게 해 줬으면 얼마나 좋아요. 하는 말은 속으로 삼킨다. 사실이기도 하고 일부러 핑계하기 좋게 숙제를 미루는지도 모른다. 몸 하나로 살아가는데 달래가면서 일해야 한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공기 빠지는 타이어처럼 탈진한다. 어렸을 때부터 근근이 버텨온 느낌이랄까. 저질 체력. 어머니가 하는 말, 너의 약함이 너를 건강하게 살게 할 것이다.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안 좋은 음식이 들어가면 어떤 형태로든지 반응을 하는. 어떤 글에 ‘건강해야 성공이다’라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닐지도. 몸으로 하는 일을 하면서 공부도 더 잘된다. 일머리가 통한다고 하던가. 다음 아르바이트는 어떤 것에 도전장을 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