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훈련을 마치는 날, 아들이 있는 땅이라도 밟아야겠다고 용인에서 동서가 왔다. 면회가 안 되니 볼 수는 없다. 멀찍이서 격리된 하늘과 나무들만이라도 들여다보는 모정이다. 공군은 훈련을 마치면 집에 이박삼일 외출을 나갔다가, 특기학교로 헤쳐 모이는데 코로나 때문에 문을 걸어 잠갔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수목원에 산책하러 간다. 새로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꽃들이 꼭, 몸속에 숨어 있다가 누구 오나 안 오나 삐죽이 내다보고 있는 것 같다. 목이 긴 알리움이 그렇다. 물 위에 둥둥 떠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수련의 웅성거림에 설렌다. 살아있는 것들은 늘 새롭구나! 감동하면서 눈과 마음에 꽃물이 든다. 살랑거리는 미풍, 따스한 햇살 조용조용한 말소리에 섞이는 웃음이 동그랗다.
몸에서 열이 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잡아놓은 약속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태원 사건 때문에 연기하자거니, 그냥 진행해야 한다느니, 팽팽하다. 통화 중에 행동반경이 진주를 떠난 적이 없는데 모임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뜨끔 한다. 떠난 적은 없지만 오는 사람을 만나기는 했는데. 동서가 육십육 번 확진 자가 자기네 동네도 다녀갔다고 예사로 한 말이 순간 떠오른다. 두려움이 와락 솟는다. 괜찮을까. 이때부터 혼자서 쓸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 쓴다. 내일 약속이 오전과 저녁에 잡혔는데.
오지 않기를 바라는 내일은 오늘로 얼굴을 바꾼다. 일찍 아들과 치과에 간다. 병원 입구에서 열을 재는데 삼십칠 도가 넘는다. 열이 왜 높을까. 의아심만 들고. 그렇다고 보호자로서 들어가지 말라거나 하지도 않는다. 코로나 이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모임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분분하다. 아들은 치료 중이고 나는 골똘하다. 조금 늦겠다고 이야기하며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려고 한다. 앞날 동서에게 전화를 해서 건강은 괜찮은가. 확인했다. 떠보는 줄도 모르고. 예, 나는 건강해요. 아니, 코로나 확진 자가 다녀갔다면서. 저는 안에만 있어서 상관없어요. 했던 말에 용기를 얻어 만나러 가기로 결정한다. 마스크를 잘 쓰기로 하고서.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와서 쉬는데 자꾸만 몸이 더워지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어머니 집에 간 남편과 통화를 한다.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이 된다. 폐가 약한 분이라서 잘못되었다면 뭔가 사달이 났을 텐데. 시험대를 통과한 것 같다. 동서 네가 어머니와 하룻밤을 잤기에. 왜 생전 안 오르던 열이 오를까. 타이레놀을 입에 머금고 잔다.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는 애매모호한. 주섬주섬 챙기고 저녁 모임에 간다. 자신 없는 모양으로 터덜터덜. 혹여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면 어떻게 하지! 마음을 졸이며 약속 장소로 발길을 옮긴다. 할 수 있는 한 입과 코를 가린다. 오랜만에 만나서 다들 반갑고 기쁘고 좋다. 코로나 발병 후 첫 만남이다. 여전히 몸이 따뜻한 것 같아서 마음 겹다.
공포는 이런 것인가. 무언가 확실하지 않으면서 떠도는 무거운 공기. 나로 인하여 누군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 다 같이 함정에 빠져 헤어나기까지의 허우적거림의 제공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렇다 보니 다른 사람을 향한 원망이라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누군가는 전염병에 감염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니까. 근거를 확인해가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니 느낌표를 가져와야만 끝이 난다.
올봄 건조함 때문인지 코가 피를 비추기도 하고 막히기도 하는 것이 거슬렸다. 조금 불편했지만 참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미댔다. 심상치 않은 느낌까지 왔다. 이비인후과에 간다. 처음 왔냐고. 아이들만 데리고 다녔다고. 신상명세서를 작성하고 기다린다. 간호사가 열을 잰다. 삼십육 점 구라고. 의사가 콧속이 헐었단다. 비염이라고 처방전을 준다. 나이 지긋한 약사가 한 개는 항생 제고 한 개는 해열제란다.
“해열제를 왜 주는데요?”
“비염이 체온을 올리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