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라서 더 소중해!
메리 스티븐 카사트, <침대에서의 아침식사>, 1897.
침대에서 아침 식사를 해야 할 정도로, 육아는 빡빡하다. 밥 먹을 온전히 먹을 시간도 없다. 그림 속 여인은 매우 지쳐 보인다. 그리고 그 여인이 곧 나이기도 하다. 점점 나만의 시간이 없어져 가는 기분이다. 육아 초기에는 온전히 다윤이를 위해 시간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마음이 답답해졌다. 일들이 쌓이건만,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몸과 마음을 분산시킬 만큼, 육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새벽에 다윤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시간을 줄 수 없을까?’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시간.
몰랐다. 이런 소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말이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고 주말에는 6~7시간 정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아내는 새벽과 점심 이후, 나는 아침과 저녁 이후이다. 이렇게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나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지금 나는 이 시간을 활용해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있다. 또 인터넷에 책을 주문하거나 운동을 했다. 답답한 그 무언가가 뚫리는 기분이다.
나의 숨통을 조이면서, 타인의 숨통을 풀 수 있을까? 내 숨통이 조여 오는 그 순간, 나는 정신이 혼미하고 상대방의 숨통은 더 강하게 쥐게 될 것이다. 육아 전까지는 채찍질을 해야 성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성공은 여러 가지였음을 깨닫고, 채찍질과 당근을 자유자재로 쓰는 사람의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은 채찍질이 강할 때이지만 이제는 숨통을 틔우고, 당근을 적절하게 줄 방법도 배워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당근과 채찍을 자신의 삶에 잘 적용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윤이를 온전하게 바라보기 위해, 나만의 시간도 오롯이 가져 본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엄마와 아이>, 1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