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너라서 더 소중해!
구스타프 클림트, <여자의 세 시기>, 1905.
그렇게 좋으신 것일까? 할머니가 된 나의 어머니는 영상통화 속 다윤이의 얼굴을 보면서 웃고 계신다. 그러다 영상 속 보이는 얼굴을 보며, 엄마는 “내가 많이 늙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젊고 꿈 많을 때가 있었겠지.’ 공부를 곧 잘했던(이라고 항상 말씀은 하셨지만, 확인은 하지 못했다.) 엄마. 하지만 가난과 여성이라는 시대적 제약 속에서 꿈을 포기하고 결혼을 하셔야만 했다. 꿈 많던 엄마는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를 보면서 클림트의 <여사의 세 시기>가 생각났다. 늙은 여인과 다정한 엄마와 잠든 아기의 모습은 우리 엄마의 삶이 담긴 파노라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림 속 노인처럼 허리가 굽었다. 그리고 고질적으로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 고생하신다. 나 때문이다. 항구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바닷가를 자주 갔었다. 그때마다 어렸던 나는 자주 업어달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크게 넘어질 뻔한 일이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호하려다가 크게 다치셨다. 그 이후로 엄마의 몸에는 나 대신 상처와 고통을 짊어지셔야 했다.
부모가 되면서 생긴 가장 큰 능력 중 하나는 부모님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감사하다’라는 뜻을 항상 되뇌게 된다. 감사하다 뜻하는 영어 'thank'는 생각하다의 'think'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한다. 감사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호의와 노고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윤이에게 사랑을 주면 줄수록,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순간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요즘 내가 어머니를 자주 생각하게 된 것은, 손목 때문이다. 다윤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내 손목은 곪아갔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미 그 경지를 초월해 버렸지만, 나는 이제 맞이한 육아 개학 속에서 손목이 부르짖는 아우성을 매번 듣고 있다.
그래서 산 손목 보호대. 이 아이템 덕분에 통증을 예전보다 덜 느끼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다윤이를 더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받치게 되었다.
이 조그마한 손목 보호대 덕분에!
손목 보호대를 보면서, 누군가 아픔 없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혹은 살기 위해서는 인생의 보호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 없는 인생이란 시험 속에서 매번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오랜만에 맞이한 성공은
그 공들인 기간과 반비례해 오래가지 않는다. 성공 뒤 찾아온 공허와 내리막길만 보이는 현실은 당혹스러움과 혼란만 준다. 인생이란 시험대 앞에서 나는 더욱더 힘들기만 하다.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야말로, 보호대가 필요한 것 아닌가?
오귀스트 로댕, <대성당>, 1908.
그런 점에서 부모님은 나의 보호대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호대가 요즘 생겼다. 바로 다윤이다. 역설적이다. 다윤이도 나를 자신의 보호대로 생각하듯, 내 엄지손가락을 꼭 잡고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다윤이의 작은 손을 잡고 있으므로, 힘든 그 순간순간을 버티는 것 같다. 로댕의 <대성당>처럼.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보호하는 존재다. 덕분에 나는 다윤이를 위해, 조금 더 일하고, 지쳐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 생긴다.
그 조그마한 손이 내 인생의 보호대라는 역설이 날 행복하게 만든다. 그녀의 활짝 웃는 미소가 내 하루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고맙다, 내 인생의 보호대!
그리고 감사합니다. 부모님, 내 인생의 보호대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