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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슨트 춘쌤 Apr 26. 2022

응답하라!

#16. 너라서 더 소중해!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가브리엘과 장>


다윤이가 즐거워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촉감 놀이를 할 때다. 이 그림은 르누아르의 아들 장과 유모 가브리엘이 촉감놀이하는 순간을 그린 그림이다. 다윤이도 부쩍 손가락으로 많은 것을 잡으려 한다. 모든 것이 신기할 나이다. 이유식도 집어 먹고, 물도 만지려 한다. 강이와 산이는 다윤이 덕분에 피해 다니기 바쁘다. 잡히면 꼼짝없이 털을 뜯기기 때문이다.      

 이런 다윤이에게 요즘 새로운 놀이가 생겼다. 바로 옹알이다. 처음에는 '아~' '으어~'였다.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니고 나니, 이제는 제법 ‘어~마’와 ‘아~빠’를 쉬지 않고 말하고 있다(듣고 싶은 대로 듣는 중이긴 하다). 물론 고함은 필수다. 옹알이는 아기에게 있어, 놀이이자 말을 배워나가는 순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때 상대방의 반응이 매우 중요하다. 어른의 말소리를 듣고, 흉내 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의미가 없어 보이는 옹알이도 사실은, 배움을 위한 다윤이의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때, 만약 어른이 반응이 없으면 아기의 옹알이는 감소해 버린다. 그리고 말하는 횟수가 줄어버리고, 말문도 늦게 열린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서, 세상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응, 즉 ‘리액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말과 행동은 없다. 하지만 그 말에 반응하지 않으면, 대화는 단절되고, 관계는 고립된다. 상대방의 옹알이를 알아채는 것. 그리고 그것에 반응해 주는 것. 그것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장모님은 ‘리액션’의 대가라 할 수 있다. 다윤이가 옹알이를 하려 하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신다. 

“사위, 다윤이가 부르고 있어요!”

장모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양한 ‘리액션’을 가르친다. 손으로 입을 치며 소리를 내는 방법, 인사를 하는 방법 등이다. 덕분에 다윤이는 표정이 밝고, 옹알이를 많이 한다. 그런 그녀를 보며 우리는 ‘수다쟁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그런 그녀도, 나와 있으면 옹알이가 많이 줄어든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옹알이하면서 놀아달라고 일어날 때, 나는 “다윤이 일어나고 싶어?” 한마디로 끝을 낸다. 동요를 틀어주고, 끝이다. 


 평상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나와 장모님의 차이를. 하지만 다윤이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날이 있었다. 나와 함께 하는 순간, 지루해하며 하품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모님과 만날 때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참았던 수다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내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계속 여보와 있어야 하는데, 말 늦게 하면 어떻게 해!” 나도 걱정이다. 이후, 장모님을 관찰하며 나와 가장 큰 차이가 ‘리액션’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제임스 티소, <연못가에 있는 뉴턴 부인과 아이>, 1877-78. 


 제임스 티소의 그림은 ‘리액션’의 순간을 담았다. 그림 속 뉴턴 부인은 다윤이 또래로 보이는 아기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손을 들고 말할 때, 아기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나는 다윤이가 아기이기 때문에 모를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리액션’은 마음에 공감하는 행위임을 깨닫는다.      

 “우~아! 아~빠!” 다윤이가 옹알이를 한다. 

 “그래! 다윤아, 아빠랑 놀고 싶은가 보구나!”      

 나는 ‘리액션’을 하고, 활짝 웃는다. 그리고 그녀를 목에 태워 산책하러 나간다. 다윤아! 어제보다는 아빠, 조금은 더 다윤이 말 알아듣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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