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너라서 더 소중해!
칼 라르손, <11월의 에스뵈른>,
칼 라르손이 그린 <11월의 에스뵈른> 속 아기는 다윤이와 닮았다. 약간, 노란색이 가미된 머리카락, 통통한 허벅지, 미소 짓는 표정이 특히 닮았다. 칼 라르손은 자녀가 8명이나 되었다. 그는 자녀들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막내 에스뵈른을 그릴 때, 얼마나 행복했을까?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다윤이 얼굴에서 아빠가 보일 때가 있다. 그녀가 활짝 웃을 때 도드라져 보이는 광대가 그렇다. 다윤이 덕분에 고향 땅에 있는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아빠는 항상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일해라!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해라! “
그 말은 아버지의 삶을 함축하는 ‘슬로건'이었다. 중학교 졸업만 하셨던, 아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쓰셨다. 막노동에서부터 경양식 주방장, 용접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있어, 학력은 가리고 싶은 상처였다. 그래서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교사가 되었을 때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배우지 못한 상처 때문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요즘 들어 시를 쓰고 계신다. 힘들 때마다 한 글자, 한 글자씩. 아빠는 시라고 말하지만 나는 삶이라고 읽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빠의 시는 삶처럼 거칠다. 그러나, 진심이 담겨 있다. 특히, 다윤이를 위해 일하시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 쓴 시가 내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그 '시'는 손녀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칠지만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진심을 담아 표현할 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아빠가 쓴 시 덕분에 이 글을 나도 쓰게 되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유보트가 그린 <작업복을 입은 사내>는 아빠의 뒷모습처럼 보인다. 인생이란 거친 작업장의 일을 끝내고 가족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 속에서 사랑과 헌신, 희생을 배운다. 그림 너머에서 아빠를 뒤따라가고 있는 내가 보이는 듯하다. 그렇게 나도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
귀스타프 카유보트, <작업복을 입은 사내>, 1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