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너라서 더 소중해!
그 더운 날에도 강이는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잔다.
더위 속에서 버티는 강이의 모습은 일견 숲 속의 왕,
호랑이처럼 보인다.
매서운 눈빛, 늠름한 자태, 그리고 강이의 나무집을 바라보면 이 그림이 생각났다.
단원 김홍도와 표암 강세황의 합작품인 <송하맹호도>는 소나무는 강세황, 호랑이는 김홍도가 그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당대 뛰어난 화가, 학자였던 강세황은 김홍도의 스승이었다. 강세황의 역동적인 소나무와 가지의 모습은 호랑이의 기세를 더욱더 돋보이게 만든다. 강세황은 철저하게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을 빛내주는 배경을 그렸다.
만약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거대한 나무를 그렸다면, 호랑이의 위세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너무 왜소하거나 정적인 소나무를 그렸다면, 배경으로서 제 역할을 못 했을 것이다. 딱 적절한 크기와 동세를 보여주는 이 배경은 김홍도의 호랑이를 더욱더 빛나게 해 준다. 강세황이 이 그림을 그려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사랑하는 제자 김홍도의 성장에 뿌듯해했을 것 같다. 자신을 뛰어넘는 제자의 존재는 강세황의 일생 가장 큰 자랑거리였을 것이다.
나의 마음도 그렇다. 다윤이 100일 사진 재촬영을 통해, 강세황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 첫 번째 촬영은 실패했다. 다윤이가 너무 졸려했기 때문이다.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심기일전했다.
다윤이의 웃음 한 번을 위해, 아내와 나는 연신 100일 주인공을 웃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사진 속에서는 부모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부모 덕분에 활짝 웃는 다윤이의 아름다운 미소만 드러날 뿐이다. 우리는 강세황처럼, 철저하게 배경이 되었다.
훗날 다윤이의 100일 사진을 보면서, 두고두고 사진 속 배경이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그림으로 뽑힌 벨레스케스의 <시녀들>처럼.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였다. 그가 그린 그림 속에는 주인공처럼 보이는 마그라리타 공주가 있다. 하지만 화가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는 것은 거울에 비친 공주의 부모님이었던 펠리페 4세 국왕 부부였다. 그러나 공주를 위해 그들은 배경이 되었다. 작은 거울 속 형태로 말이다.
부모는 다윤이의 인생이란 그림 속에서 주인공이 아닌, 배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윤이가 스스로 주인공이라는 걸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그것을 벨레스케스가 <시녀들>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항상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때로는 배경이 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1657.
<송하맹호도>, <시녀들>을 계속 음미하며 바라본다.
이 그림들을 생각나게 해 준 강이를 다시 한번 쓰담쓰담해준다. 너도, 우리 가족이야!라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