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너라서 더 소중해!
메리 스티븐 카사트, <아이를 안아 주는 엄마>, 1890-91.
아이를 안아 주는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림 속 아이는 우는 듯하다. 어디 아픈 것일까? 아기는 어디 몸이 좋지 않은지 엄마를 꼭 안고 있다. 메리 카세트가 그린 <아이를 안아 주는 엄마>를 보면, 다윤이의 태열이 생각난다. 꼭 병원에 가야 할 일은 일요일에 발생한다. 다윤이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졌다. 두드러기가 올라온 것처럼 여기저기 엉망이다. 놀란 나와 아내는 병원에 갔다. 하지만 의사의 진단은 간단했다. "태열입니다." 시원하게 아이를 두는 것, 그리고 수딩젤을 조금 발라주면 되는 지극히 별것 아니었다.
그렇다! 다윤이는 건강했다. 하루에 8번 이상 기저귀를 갈고, 십수 번에 달하는 젖병을 씻고 말려야 할 정도로. 그 순간 나는 정작 걱정해야 할 큰일에는 침묵하거나 모르고 지나가면서
작은 일에는 호들갑 떨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윤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다윤이의 반응에 어쩔 주 몰라고 하며 당황해한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 가보면, 다윤이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익룡인가? 분명 얼굴은 다윤인데, 목소리는 익룡이다. 잘 때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천사이지만, 손가락 발가락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가끔은 자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놀라 잠에서 깨기도 한다. ‘왜 익룡 소리를 내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영아 산통 때문이란다.
태열과 영아 산통은 지나가는 아이들의 성장통이다. 그런데 초보 부모인 우리는 조그마한 다윤이의 반응에도 매우 놀란다. 마치, 기억도 나지 않을 작은 일에 스스로 속을 태우고 있는 나처럼. 그러다 보면, 정작 더 걱정하고 대비해야 할 일들은 놓쳐 버린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일의 작은 '태열과 영아 산통'에 허둥지둥 당황해한다.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별 것’으로 만든 것은 나의 무지와 조급함 때문이다. 이제는 태열과 영아 산통이 와도 요란하지 않다. 이미 경험한 것이고, 지나갈 일들이란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조금씩 초보 부모로서의 길을 탐색하며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