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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슨트 춘쌤 Apr 26. 2022

가장 예쁜 순간

#10. 너라서 더 소중해!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성가족>


육아 선배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잘 때가 가장 이쁘지?” 다윤아 미안하다. 그 말에 아빠는 조금은 동의한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도 그랬다는 것이다. 렘브란트가 그린 <성가족>은 잠이든 예수와 그것을 확인하는 성모 마리아가 보인다. 예수가 잘 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마리아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잠든 아기를 바라보는 부모의 표정이 모두 저렇다. 마리아는 천사의 도움을 받아 예수를 푹 잘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그 어떤 부모도 가질 수 없는 엄청난 일이다. 나는 신과 천사의 도움 없이, 다윤이를 다독여 재워야 한다.      

P.M. 9시. 다윤이를 돌볼 시간이다. 


다윤이를 침대에 놓은 다음 그림 속 마리아처럼 그녀를 바라본다. 다른 점은 마리아는 잠든 예수를 바라봤다는 것이고, 나는 말똥말똥한 다윤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겨우 잠이 든 것을 확인하면 마음이 놓인다. 곧 나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


P.M. 10시.

다윤이가 일어났다. 자다가 깜짝 놀라며 우는 그녀를 껴안았다. 따뜻한 몸의 체온이 느껴졌다. 조금씩 다독이다 보니, 잠이 들었다. 나도 함께….     


P.M. 11시. 

배고 고팠는지, 칭얼거리며 다윤이가 또 일어났다. 분유를 타서 배부르게 만든 다음 다시 재웠다. 그리고 그림 속 마리아처럼 나는 책을 펼쳤다. 내심 다윤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잠으로 보내기 아쉬웠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고 싶기도 했고, 잠만 자는 아빠로 각인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제법 이 시간은 책 읽기 좋은 시간이다. 다윤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책 속 문장을 하나하나 깊게 읽어 내려갔다. 이전 여유 있을 때도 이렇게 깊게 읽어나가지는 못했다. 피상적으로 보고, "책을 다 읽었다"를 외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베르트 모리조, <정원에 있는 아빠와 딸>, 1883.


하지만 다윤이를 돌보면서 그 문장 하나하나를 제대로 보게 되었다. 그녀를 키우면서 생긴 습관이다. 하나를 보더라도 제대로 보자.      

 베르트 모리조는 자신의 남편이 딸과 함께 있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 속 아빠도 딸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있다. 정원에 있는 부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보인다. 나도 이 그림 속 남자처럼 딸을 응시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쳐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헐렁한 사람이다. 실수가 잦다. 빠르게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의미 있게 그 시간을 보내느냐 임을 깨닫게 되고 나서 의식적으로, 


'느리게'

'더 깊게'     

보고 생각하려고 한다.      

 다윤이를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1~2년이 지나면 내 품 안에 쏙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클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녀를 더 깊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A.M. 0시. 

 아내와 교대했다. 그렇게 나의 일생 중 하나뿐인 시간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의 여운은 이 글로 남아 다윤이에게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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