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한다는 것]
▶ 서로의 마음을 알 때, 사랑이 태어난다.
냥: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이네요. 아름다워요.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손 키스를 하고 있어요. 여자의 볼 빨간 얼굴에서 수줍어하는 모습이 보여요. 얼굴도 돌렸고요. 부끄러움이 많은 여자군요.
낭만적인 그림이죠. 고대 그리스-로마풍의 옷을 입은 남녀의 풋풋한 사랑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이 그림은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더 묻지 마세요」입니다. 무엇을 묻지 말라는 이야기일까요? 아마 자신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이겠죠. 그리고 연인 혹은 결혼하자는 말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둘은 분명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생각할 사(思)와 헤아릴 량(量)이 만나 이뤄진 단어라고 합니다. 사랑은 그래서 타인을 생각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죠. 그리고 사랑은 사람의 삶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겨납니다. 여러분 개, 고양이에 대한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픔의 전시실을 지나, 공존의 전시실에서는 다시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실 거에요.
개:슬픔의 전시실에서는 너무 슬펐어요. 고양이가 대학살 당하거나, 우리 개들이 음식, 놀이대상, 전쟁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거든요. 나보다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인간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고요.
냥:언제나 나를 위해 사랑해 줄 거로 생각했던 인간의 어두운 면이 무서웠어요. 그리고 걱정도 되고요. 앞으로도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림의 제목처럼 다시는 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선조들이 받았던 그 핍박과 인간의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그림을 보겠습니다. 장 자크 바슐리에의 「나비를 뒤 쫓는 하얀 앙고라고양이」입니다.
▶섬세한 붓터치는 화가가 이 고양이를 얼마나 세심하게 봤는지를 알려준다.
냥: 하얀 앙고라 고양이가 나비를 쫓고 있어요.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사물, 동물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앙고라 고양이는 터키 앙카라 출신들이에요. 서양에 알려진 털이 긴 최초의 품종이기도 하고요. 오스만투르크의 술탄이 유럽의 왕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을 정도로 도도한 고양이예요.
그림 속에 보이는 것처럼 앙고라고양이는 매우 도도해 보이면서도 신비로워 보여요. 이 그림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드디어 그림에 고양이가 단독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18세기 중반이 지나면 그만큼 고양이가 다시, 유럽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19세기가 되면 고양이는 귀족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고양이들이 한가롭게 인간들과 같이 있는 그림들이 늘어나거든요. 조반니 볼디니의 「검은 고양이와 함께 있는 소녀」그림을 보세요. 과거 악마의 하수인으로 여겨졌던 검은 고양이가 귀여운 소녀와 함께 있는 모습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개:소녀의 품 안에서 사랑받는 검은 고양이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제 인간들은 더 이상 검은 고양이를 악마의 하수인으로 보지 않고, 사랑의 대상으로 보게 된 거군요.
냥:고양이의 표정을 보니 소녀의 품 안에 있는 것이 조금은 불편해 보이네요. 그리고 우리 고양이를 저렇게 안으면 안 돼요. 아마 그림을 그릴 때 소녀가 힘들었겠어요. 고양이가 도망가려 했을 테니깐요.
▶저주가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 다시 인정받은 고양이
도망가려 애쓰는 고양이를 끝까지 잡고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노력한 소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대견해요. 그만큼 검은 고양이를 사랑한 거예요. 자신과 함께 있는 그림을 남기고 싶었던 소녀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인간들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더욱 커집니다. 그림 속 남자를 보세요. 그 옆에 있는 줄무늬 고양이는 이 남자의 분신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개:그동안은 여자 혹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고양이 그림이었는데, 이제 성인 남자와 함께 고양이가 그려져 있네요.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간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그림은 앙리 루소의 「피에르 로티의 초상」입니다. 그림 속 남자는 피에르 로티에요. 그는 뛰어난 작가였고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죠. 고양이를 매우 사랑해서 “내 눈은 고양이의 눈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내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라는 말을 했어요. 자신을 고양이와 동일시 한 것이죠. 실제로 그는 많은 길고양이를 구조했어요. ‘캣파더’의 시초라 할 수 있죠. 그리고 프랑스 고양이 보호 협회의 명예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습니다.
▶캣맘 이전에 캣파더가 있었다.
냥:다시, 고양이를 사랑하기 시작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 역시, 인간들은 자신이 마음을 준 존재가 있다면 항상 자기 옆에 두는 것 같아요.
개도 마찬가지였어요. 비록 앞에서 슬픈 이야기들을 다뤘지만, 인간의 역사 전체로 봤을 때 개들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했죠. 인간과 개의 동료 관계는 상상 이상으로 끈끈했어요.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가 그린 「개의 벼룩을 잡는 소년」을 보겠습니다
개:벼룩은 항상 개를 귀찮게 해요. 아무리 긁어도 벼룩은 털 사이에 살아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죠. 인간들이 이렇게 벼룩을 잡아주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그림 속 소년은 귀족이나 부자가 아니에요. 가난해 보이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보입니다. 그런 소년이 따듯한 햇빛을 받으며 개의 벼룩을 잡아주는 모습은 매우 사랑스러워 보여요. 화려한 것 하나 없는 이 그림에서 이 둘의 유대관계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개와 인간은 자신의 긁은 곳을 서로 긁어 줄 수 있을 정도로 끈끈한 관계입니다. 개는 인간이 가장 지치고 고독한 순간에 함께 있어 주는 존재이기도 하죠. 요한 하이리히 퓌슬리의 「새벽의 고독」은 사실 개가 아닌, 인간이 개에게 얼마나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어요.
▶개의 이를 잡는 소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느낀다.
냥:소년은 하루가 매우 힘들었나 봐요. 발바닥이 검은 것으로 봐서 힘든 일을 겪은 것 같아요. 바위에 기대 있는 그 순간에도 옆을 지켜주는 것은 개네요. 그에게 있어 개는 힘든 삶 속 유일한 희망처럼 보여요. 다가오는 새벽처럼 말이에요.
▶지친 인간을 위로하는 개, 그 하나만으로 개는 인간의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
인간에게 있어 개와 고양이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에요. 함께 사랑을 주고받은 존재들이죠. 그런 존재와 함께 역사를 만들며, 지구에서 살아왔던 것이에요. 다만 인간이 이것을 잊고 살았을 때도 있었지만요. 그러나 인간은 여러분들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더 묻지 마세요」처럼 수줍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다시 사랑해 주시겠어요? 여러분들도 그림 속 여자처럼 “다시 묻지 마세요”라고 이야기 해주실 것이라 믿어요. 여러분들은 동물이 아닌, 우리 인간의 가족이니깐요.
개: 힘든 시절도 분명 있었지만, 인간을 믿어요. 그리고 저 또한 사랑해요. 수많은 그림에 우리 개와 고양이를 그려 넣어 준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한다는 뜻일 테니깐요. 다시는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더 사랑해 주세요.
냥: 과거의 잘못만큼 더 사랑해 줄 걸 믿어요. 우리 고양이들은 퉁명해 보이지만, 그만큼 인간들을 믿고 사랑해요. 다만 표현방법이 서툴 뿐이라는 것,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