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우산으로 본 세상

#1. 소소한 시선이 닿는 순간

by 도슨트 춘쌤
귀스타브 카유보트, <비 내리는 예르>, 1875

현관문을 나서니,

비가 적적하게 내렸다. 카유보트의 <비 내리는 예르>처럼.

출근길 곳곳의 웅덩이들을 보면서 카유보트의 그림이 생각났다. 비가 내리는 잠깐의 ‘인상’ 도 잠시, 우산 사이로 비가 들어왔다. 급하게 나오다 보니, 찢어진 우산을 들고 나온 것이다. 찢어진 우산 사이로 보이는 출근길은 아름다웠다. 기대하지 않았던 광경이다. 항상 눈으로 봤던 모습이지만, 찢어진 우산 사이로 보이는 광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온전한 우산이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광경이다.

기대하지 않은 놀라움은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 중 하나인 것 같다.

비를 막지 못하는 쓸모없는 우산도 찢어졌기 때문에, 이전과 다른 광경을 나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쓸모없음이 상황에 따라서는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이 생각이 났다. 막대한 유산을 소유했지만 화가를 꿈꿨던 카유보트.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후원하고 그들의 생각에 공감하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가 공감했던 것은 ‘현실’을 그리는 것이었다. 신화와 역사 속 상상의 장면을 그리는 신고전주의가가 아닌, 근대화를 맞이한 19세기 프랑스의 현실.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1877

하지만 당시 대다수의 화가와 평론가, 관람객들은 이런 ‘현실’을 그리려고 했던 인상주의자들을 조롱했다. ‘인상주의’라는 칭호 자체가 조롱에서 나온 칭호였다. 도리어 카유보트는 카메라가 찍은 사진의 한 장면처럼, 당시의 파리를 담았다. 카유보트가 이렇게 솔직한 파리인들의 현실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누군가의 평가를 바라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카유보트는 근대 프랑스인, 당대인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카유보트는 기존 세상에서 요구하는 체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것은 찢어진 우산을 들고 거리를 다니는 것과 같다. 찢어진 우산 사이로 이전과 다른 풍경을 발견할 수 있듯,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사실, 인생은 항상 의도하는 것처럼 되지 않는다. 어떨 때는 계획과 너무 달라지기도 한다. 내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계획에 어긋난 그 틈 사이로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할 때, 내 삶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혹시, 오늘 의도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의도되지 않은 광경을 오롯이 바라보자. 생각하지 못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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