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키 트

#18. 소소한 시선이 닿는 순간

by 도슨트 춘쌤

집에서 음식을 자주 먹게 되면서, 밀키트 구매량이 늘어났다. 편하게 먹을 수 있고, 직접 음식을 하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 퇴근길에 판매점이 많이 생긴 것도 이유로 뽑을 수 있다. 새로 생겼는데, 그냥 지날 수 없지 않은가?

밀키트를 사서 먹으면서 배달음식이 줄어들었고, 음식 솜씨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제법 요리 도구들도 능숙하게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밀키트 덕분이다.

세상에는 밀키트 같은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

그림에도 그런 ‘밀키트’가 있다. 18세기 후반~17세기 초반에 유행한 ‘신고전주의’ 그림이다. 이 그림들은 ‘원근법’과 같은 르네상스 이후 기법들을 활용하여, ‘역사화’를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신고전주의 화풍의 그림은 주로 아카데미의 기본적인 그림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그림은 상당히 도식적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그림 속 주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상당한 근육질의 이상적인 신체로 표현되어 있다. 신고전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상당히 정돈되고, 메시지가 분명한 그림이다. 하지만, 밀키트만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신고전주의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점차적으로 도식적인 그림들이 기준이 되면서 화가의 감정을 제약한다는 문제점들이 생겨났다.

76p,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jpg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은 화가들이 등장했다. 바로 모네를 대표로 하는 ‘인상주의’자들이었다. 빛의 변화를 주제로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그렇다 보니, 신고전주의와 같은 그림이 나올 수 없었다. 원근법은 무너지고, 붓질은 투박했다. 모네의 <인상-해돋이>가 대표적이다.

77p, 클로드 모네, 인상-해돋이, 1872..jpg

클로드 모네, <인상-해돋이>, 1872.




<인상-해돋이>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비해 상당히 완성도가 떨어져 보인다. 심지어, 형태도 뭉개져 있어, 무엇을 그린 지 명확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것은 밀키트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것과 같다. 물론, 밀키트보다 맛없을 수 있다. 인상주의 그림들도 처음에는 이런 애매모한 형태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고, 조롱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현대 미술의 시작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것은 인상주의자들은 자신만의 시선에서 주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느낌을 그렸기 때문이다.

결국, 나만의 요리를 생각하고 도전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밀키트는 그 단계를 위한 디딤돌이다.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밀키트가 요리를 위한 디딤돌이었음을 깨닫는다.

덕분에 프라이팬에 이것저것 구워보고, 밀키트에 이것저것 넣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밀키트들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를 위해

시도를 해보는 것.

밀키트로 시작해서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

남이 주는 음식이 아닌, 내가 만들어 먹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삶도 남이 주는 밀키트가 아닌, 내 밀키트,

내 레시피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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