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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e Dec 31. 2020

모든 제품은 팀에 의해 만들어진다.

'SHIROBAKO 애니메이션을 보며' 프로덕트팀 기획자의 역할

최근에는 잠에 들기 전, 넷플릭스에서 'SHIROBAKO'라는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의 일상을 그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습니다. SHIROBAKO는 엑소더스, 제3비행소녀대 라는 애니메이션이 첫 화부터, 최종화까지 제작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주인공 '미야모리'는 이제 갓 입사한 애니메이션 제작부의 신입으로 2개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겪는 고민과 어려움들을 바탕으로, 어엿한 프로듀서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미야모리가 품은 고민들은, 프로덕트 매니저로 어찌보면 IT업계의 제작부에 속한 저에게도 깊이 와닿았습니다.


어떤 화에서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엑소더스의 결말을 어떻게 끝낼지, 어떠한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해줄지를 고민하며 콘티를 완성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콘티가 제대로 나오지 않자 그림, 3D, 스토리 등 협업부서들의 일이 밀리고, 방영 스케줄에 맞추지 못할 위기가 발생하죠. 이때 미야모리는 감독에게 콘티로 그릴 캐릭터의 취미를 물어보며, 감독이 그리는 엑소더스의 방향을 함께 되짚어 보고 다시 잡아가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화에서는 손그림을 추구하는 원화작가와 3D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효과를 그리는 디자이너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3D프로그램의 눈부신 발전으로 손그림만이 만들 수 있는 섬세함과 역동적인 움직임의 영역을 표현할 수 있게 되자, 기존의 방법론과 새로운 기술이 충돌한 것이죠. 이 때에도 미야모리는 각 기술자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며,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팀이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미야모리의 역할은 애니메이션의 방향을 함께 그리는 것, 유관부서의 소통을 돕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완성된 원화그림을 배달하기 위해 발로 뛰기도 하고 성우 오디션의 심사에도 참관합니다. 애니메이션 제작 스케쥴을 관리하기 위해, 협업 부서들의 제작 일정을 취합하는 역할 등 미야모리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전과정에 참여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결국 미야모리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잡일부터 애니메이션의 방향성을 잡는 일까지 모든 영역을 추적하고 관리하며, 이를 통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엑소더스와 제3비행소녀대가 완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미야모리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SHIROBAKO의 주인공 미야모리가 제작부 신입으로 설정된 것도, 애니메이션 제작기의 전과정을 관찰하고 보여주기에 가장 적절한 직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야모리에게는 큰 고민이 있습니다. 극 중에서 미야모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을 꿈꿔온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게 됩니다. 원화가, 성우, 작가, 3D디자이너 등 다양한 꿈을 가진 친구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크게 외칠 때, 미야모리는 '그럼 나는 무엇이 되는거지?' 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그때 친구들이 말하죠. "너는 프로듀서가 될거야!" 미야모리는 친구들의 말을 통해, 자신의 방향성을 깨닫곤 미소 짓습니다.


제게 SHIROBAKO 속에서 미야모리가 하는 고민은 마음에 깊이 와닿는 것이었습니다. 미야모리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팀의 협업을 돕고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단일 부서로서는 존재할 수 없고 가치가 없습니다. 미야모리는 원화가, 성우처럼'어떠한 것을 만드는 역할'을 그릴 수 없습니다. 오직 만드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으로만 존재할 수 있죠. 그렇기에 미야모리에게 '어떠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가'는 굉장히 모호하고 추상적인, 희미한 길로 느껴졌을 겁니다.


저는 이것이 IT업계에서 '기획자'가 가지는 어려움과 혼란, 혹은 오해와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기획자 또한 개발자, 디자이너가 하는 일을 돕는 역할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자들이 자신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이죠. 그렇기에 기획자 무용론이 흔히 들려오는 것일테죠.


하지만 미야모리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고 애니메이션 제작의 중요한 역할로 취급받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애니메이션이 "팀"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1~2명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는 있으나, 그러한 과정에는 굉장히 많은 제약과 어려움,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안정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수의 제작자들이 참여할 수 밖에 없죠. 이건 IT제품도 동일합니다. 처음에는 1~2명이 만들 수 있지만,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다수의 기술자가 필요하고 이를 정렬할 역할을 찾게 됩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역할을 기획자/매니저/오너가 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각 분야의 기술자들이 알지 못하는 사용자와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사용자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구현하는 방향을 의논하고 정렬하는 사람, 각 분야에 충분한 배경지식을 갖춘 사람'이 되길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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