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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꽃 Sep 28. 2022

내 나이가 어때서

나도 꾸준히 타다 보면 저분처럼 탈 수 있을까. 저분이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데.


처음 피겨를 배울 당시 알게 되었던 50대 분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그분이 지칭하신 분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지만 그분의 얼굴에 주름이 자글 했다. 60대 후반? 70대? 아무튼 그 50대분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50대분은 나보다 한 달 늦게 피겨를 배우신 분이었고 그 나이를 알 수 없으신 분은 피겨를 탄 경력이 10년이 넘었다. 10년 경력의 그 아저씨는 우리 피겨 성인반의 에이스 중 한 명이었다. 한때는.




그 당시 나는 한 달 늦게 배운 30대 분과 50대 분과 친분을 쌓으며 피겨를 탔다. 비슷한 시기에 배웠으니 공감대 형성이 가능했다. 그러다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반을 옮기게 되었다. 30대 분은 결혼을 하며 피겨를 그만두었고 50대 분은 내가 휴가를 내고 가면 점심시간에 와서 잠깐 타다 가시곤 했다.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했다. 그래도 그렇지 밥을 안 먹고 점심시간에 스케이트를 타러 방문한다니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번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잘 안 봐줘. 전에 계시던 선생님이 잘 가르치고 괜찮았는데 말이야. 오전에 가르치는 선생님은 차별도 안 하고 잘 가르친다 하던데.


그 대화가 끝이었고 나중에 그분도 그만두셨다는 걸 알았다.




10년 경력의 아저씨는 아직도 피겨를 타시고 계시고 나도 아직 피겨를 탄다. 그때와 달라진 건 그 아저씨는 2년째 같은 것만 반복하고 있고 선생님이 더 이상의 진도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  아저씨의 실력이 많이 퇴보했다는 사실.


나 또한 더 이상의 진도를 알려주지 않아 영상을 보고 익히거나 다른 젊은 분이 진도 나간 걸 보고 주말에 혼자 연습하며 익힌다는 사실. 주말에 해볼 때마다 나도 할 수 있는 거였구나를 깨닫는다는 사실.


그 아저씨가 한 번은 플립 점프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때 딱 한 번 알려주더니 그 이후에 그 아저씨가 플립 점프를 시도해도 따로 봐주지 않았다. 다른 젊은 분이 그걸 나갔다면 계속 주시했을 텐데. 그 아저씨는 플립점프 배우는 걸 포기하셨다.

이제 그 아저씨와 나는 먼저 진도를 요구하지 않으면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다른 20대 분들은 특정 스핀을 그렇게 잘하지 못해도 새로운 진도를 알려주는데. 나는 점프도 혼자 뛰고 스핀도 독학하고 스텝도 독학한다.

같은 반 20대분께 내가 요즘 진도도 못나가서 권태기가 왔다 그랬더니 그분은 자기도 선생님이 그냥 보고 간다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해도 피드백이 없는 반면 그 분은 잘해도 피드백이 있었고 변형 자세도 쉽게 알려주는 게 보였다. 나는 딱 백카멜만 봐주는데. 더 이상 나가는 것도 없고 딱 거기가 끝인데.


처음 그 아저씨를 보았을 때 나이 많으신 분이 저렇게까지 잘 탄다는 게 놀라워 나도 저 나이까지 타고 싶었다. 그 아저씨가 강습 때마다 같은 것만 하시고 집에 가실 때마다 나는 저러면 지겨워서 못 다닐 텐데 싶었다. 피겨에 대한 찐 사랑이 대단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저렇게 매일 같은 것만 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걸 많이 배워보고 싶다. 그래서 독학을 선택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나도 나이가 많다고 느껴지니까 관심 하나 없는 거겠지 싶지만 아직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 30대인데? 아직 넘어져도 안 아프고 점프를 한 시간 넘게 뛰어도 괜찮은데? 그분을 볼 때마다 내가 독학을 안 했더라면 나도 저렇게 몇 년째 같은 것만 하고 있지 않을까 싶. 내가 독학을 그만두면 진도도 여기서 끝나겠지. 여기서 멈추게 될까봐 불안하다. 뭘 하든 간에 단정적으로 '너는 나이가 많아 안 될 거야.' 라는 전제를 먼저 깔고 들어가는 게 싫다.


나는 저렇게 되고 싶지 않.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탔는데. 정말 잘 타고 싶어서 타는 건데. 잠깐 하고 그만둘 취미가 아닌데.




한때 주 2회 개인강습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같이 단체 강습을 들었던 20대분들이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저희 지상 훈련하러 가요."

"선생님한테 하고 싶다고 한 거예요?"

"아니요. 선생님이 먼저 지상 권유하셨어요."


그분들이랑 나는 진도가 똑같았다. 나는 주 2회나 개인강습을 받고 있었는데 지상훈련 권유를 못 받은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정말 나이 때문이었을까. 그 말을 듣고 나는 한참 우울해졌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기회조차 없었구나 싶어서. 나에게는 "성인은 지상 안 돼요." 이랬던 게 생각나서.


나는 내가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나라고 목표가 없는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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