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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꽃 Sep 28. 2022

그분 그만두셨어요.

요즘 들어 피겨를 그만둔 사람들이 생각나요. 권태기가 도져서 그런가. 생각나는 여러 명 중에 한 사람이 있네요. 이분은 타국에서 온 외국인이었어요. 한국에서 일을 하시고 계셨지요.


처음에 헬맷을 쓰고 수업을 들으셨어요. 약 1년 동안 그렇게 타시다 헬멧을 벗으셨어요.  오래 쓰신 거였요. 수업 때 헬멧 쓰는 사람이 거의 없긴 지만, 있다 해도 3개월 정도면 벗거든요.


그분은 한국말을 좀 하셨어요. 본인은 한국말이 서툴다했지만 서로 한국말로 긴 대화를 하기에 어려운 점이 없었어요. 저처럼 강습 때 빠지지 않았고 주말마다 항상 오셨어요. 서로 시간이 으면 매번 근처 카페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고 다시 타곤 했어요.


카페에서 주로 나누던 이야기는 피겨 이야기였어요. 사적인 이야 할 때가 있었지만 무래도 피겨 타다 만난 사이잖아요? 엄청 친한 사이였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항상 그렇게 만났던 것 같아요.


피겨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했고, 제가 가보지 못한 타지역 빙상장은 어떤지, 또 하고 싶은 기술에는 어떤 게 있는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곤 했어요. 매번 주제는 달라지긴 했지만 하고 싶은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꼭 했답니다. 재밌었어요. 언젠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으니까요. 알고 보니 동갑이었더라고요. 제 또래는 없었는데 그걸 알고 내심 좋았어요.


그분도 자주 나오고 피겨를 좋아하 건 확실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단체강습 때 같이 원을 뱅뱅 도는 크로스를 하다가도 저 멀리로 빠져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대충 하거나 그랬어요.

그분이 원스핀을 성공하고 싯스핀 나가는 즈음이었어요.


피겨 쉽게 느는 운동 아니에요. 저처럼 운동에 감이 없는 사람들 자주 나와도 잘 안 될 때가 더 많아요. 그분도 그러셨지요. 원스핀을 겨우 잡아놓고 싯스핀을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회원님. 더 앉아서 돌으셔야 해요."


그때 하기 싫다는 눈빛이 보이는 듯하더라고요. 이해는 되었어요. 하나를 겨우 성공시키면 다른 하나, 그리고 다른 또 하나. 계속 는데  그전에 완성시킨 걸 생각하면 언제 될지 모르는 거거든요. 그분은 원스핀을 거의 1년 만에 완성시키셨어요. 정말 오랜 시간, 주말에도 나오며 공들이신 거였죠. 하지만 스핀이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보니 그때부터 다 놓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느 날 빙상장에 가다 우연히 길이 겹쳐 같이 가게 된 일이 있었어요.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잘 못해도 재밌었는데 이제는 재미가 없어요. 근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게 더 재밌는 것도 같고요."


저는 피겨가 인생 운동이었고 그 당시만 해도 권태기가 없았어요.


권태기? 인생 운동에도 그런 게 있을 수 있어?



 하며 의아해하던 편이었죠. 에게는 그런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단순히 그분이 피겨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구나 했죠. 하지만 지금은 알 거 같아요. 지친 거죠. 너무 좋아하는데도 그럴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분도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 그리고 수업에 대한 나름의 기대를 매번 하고 갔겠죠?


어느 날은 선생님이 그분 점프 자세를 봐주었어요. 저는 멀리서만 보았는데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또 한 번 점프를 뛰고는 한참이나 선생님을 쳐다보더라고요. 선생님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사실 그분도 오랜만에 선생님이 점프 자세를 봐준 거였어요. 단강이라서 한 사람씩 봐주는 건 불가능하다구요? 그런데 매수업 시간마다 피드백을 받는 사람들도 있어요. 따로 불러서 해보라고 할 정도죠.


10년 경력의 다른 강습생분은 선생님이 점프를 뛰라고 할 때마다 다른 걸 하기 시작했는데 그분도 그러더라고요.


한 번은 주말에 빙상장에서 가장 잘 가르친다고 알려진 코치분을 멀뚱히 같이 바라본 적이 있어요. 저에게 저분이 제일 잘 가르친다고 들었다고 했어요. 그 코치님이 대타로 단체강습 때 오신 적이 있었는데 나이가 많으신 코치님이라 그런지 강습생들에게 반말로 하는 방법을 알려주더라고요. 그리고 어렵게 완성시킨 원스핀에 대해 이런저런 지적을 쏟아놓으셨어요. 그분이 어떤 게 신경 쓰이셨던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점점 나오시는 날이 줄어들더니 결국은 나오지 않았어요.


강습  주말에는 오시긴 해서 보긴 했었는데 이제 못 본 지도 오래됐네요. 항상 카페에 들르곤 하셔서 한 번은 카페 주인분께 물어봤어요.


"그 외국인분 요즘 카페에 오시나요?"


"아.. 그분? 안 오신지 오래됐어요."


그분도 이제는 다니다 그만둔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어요. 얼마나 좋아했고 얼마나 노력했던지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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